쌀값 급등에 '양곡관리법 개정' 재부상…농민 '환영'·전문가 '우려'

쌀값, 열흘새 1.9%↑…올해 들어 가장 큰 상승폭
산지 재고 감소 등 영향…정부, 비축미 방출 검토
양곡관리법 재추진…일각선 쌀 과잉 고착화 우려
농민단체는 '환영'…"자율성·보상 병행되는 정책"
전문가 "농안법 등과 함께 정교하게 정책 설계해야"

뉴시스
2025년 06월 16일(월) 11:16
[나이스데이] 최근 쌀값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정부가 4년 만에 비축미 방출 여부를 검토하고 나섰다.

이런 가운데 이재명 정부가 양곡관리법 개정 재추진을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정책 전환이 쌀 수급과 시장 안정에 미칠 파장에 관심이 쏠린다.

전문가들은 단기적 시장 개입을 넘는 정교한 제도 설계를 주문하며, 장기적인 수급 균형과 재정 지속성 확보가 관건이라고 지적한다.

◆산지 쌀값, 열흘새 2% 가까이 급등…정부, 비축미 방출 검토

16일 통계청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이달 5일 기준 산지 쌀값(80㎏ 기준)은 19만9668원으로, 직전 순기(5월 25일)보다 1.9% 상승했다.

통상 계절 진폭을 감안하면 봄·여름철 쌀값 상승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계절 진폭'이란 농산물 가격이 계절에 따라 반복적으로 오르내리는 정기적인 가격 변동 패턴을 말한다.

쌀의 경우, 일반적으로 수확기(가을)에는 공급이 많아져 가격이 떨어지고 단경기(봄~여름)에는 재고가 줄면서 가격이 오르는 흐름을 보인다.

그러나 지난 두 달간 0.1~0.4%대의 완만한 오름세를 보였던 것에 비춰볼 때 이번 상승폭은 이례적인 수준이다. 실제 1.9% 상승은 순기(旬期·열흘) 기준으로 올해 들어 가장 큰 상승폭이다.

가격이 내리는 수확기까지 아직 3개월가량 남은 상황에서 벌써 평년 수준(20만원)에 근접해 향후 쌀값 급등 우려도 나오는 형국이다.

이번 쌀값 급등은 산지 재고 감소와 벼값 상승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센터(KREI)가 최근 발표한 '6월 쌀 가격 강보합세 전망'에 따르면, 올해 3~4월 산지 유통업체의 벼 매입량은 8만5000t으로 전년 대비 5000t 증가했다.

유통업체 매입량 증가하면 시장 유통물량이 감소해 시장에 쌀 공급이 부족하다는 인식을 키우고, 이는 결국 가격 상승 압력으로 작용한다.

유통업체들이 1~2월 가격 부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쌀을 7만2000t 적게 매입했으나, 3~4월 벼값 상승 이후 다시 활발하게 매입했다는 것이 KREI의 분석이다.

산지 유통업체의 보유 재고도 예년에 비해 적은 편이다. 지난 4월 말 기준 전체 쌀 재고는 71만2000t으로, 전년 대비 21만t 감소했다.

농협의 재고는 63만5000t으로 20% 가까이 줄었고, 민간 재고도 7만7000t으로 40% 이상 감소했다. 이런 수급 상황은 당분간 쌀값 강보합세를 유지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쌀값 오름세가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정부는 비축미 방출(공매)을 검토 중이다. 정부가 비축미 공매를 단행한 것은 2021년이 마지막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일부 미곡처리장이 원료곡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공급이 원활하지 못한 것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며 "아직 쌀값은 평년 수준이지만, 일본 사례처럼 방출 시기가 늦어 가격이 급등하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선제 대응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일본의 경우 지난해 생산량 감소와 정부 방출 지연이 겹치며 단기간에 쌀값이 급등했고, 지진 우려까지 더해지며 사재기 현상과 물가 불안으로 번진 바 있다.

◆새 정부, 양곡관리법 재추진…농민단체는 '환영'

이처럼 쌀값 오름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재명 정부가 양곡관리법 개정 재추진을 약속하면서 향후 쌀값과 수급 구조 변화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양곡법 개정안은 쌀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거나 시장가격이 일정 수준 이상 오르거나 내릴 경우, 정부가 초과 생산량을 '조건부' 매입하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현행법은 쌀 초과 생산량에 대해 '필요 시 매입'에 그친 반면, 이 개정안은 정부 개입을 법적 의무로 못 박고 있다.

일각에선 이 같은 초과 생산량 구매 제도가 쌀 과잉 생산을 구조적으로 고착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농민 입장에서 보면 "남는 쌀도 정부가 책임져준다"는 강한 신호로 해석돼, 농가가 감산 대신 증산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이재명 정부는 이와 함께 과거 정부의 쌀 감산 정책과 달리 '자율성 부여' 방식을 택해, 강제적 감축보다는 작목 전환 유도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농민단체는 이런 정책 기조를 대체로 반기고 있다.

엄청나 전국쌀생산자협회 정책위원장은 "윤석열 정부의 벼 재배면적 조정제는 올해 안에 8만㏊ 감축하라고 요구하는 등 지나치게 강압적이었다"며 "이재명 정부의 자율적 감축 유도와 생산비 보장은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양곡관리법은 새 정부의 제1호 민생법안이 돼야 한다"며 "앞으로는 자율성과 보상이 병행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도 최근 성명을 내어 "양곡관리법·농안법·농업재해대책법·농업재해보험법 등 농업 민생 4법을 반드시 재추진해야 한다"며 강제감축과 농지규제 완화 등 이전 정부의 '반민중정책' 철회를 촉구했다.
◆"농가소득 안정 기여하겠지만…정책 정합성·재정 지속성도 고려해야"

전문가들은 개정안이 단기적으로는 농가 소득 안정에 기여할 수 있으나, 정교한 설계가 없다면 장기적으로 과잉 생산을 고착화하고 재정 부담을 키울 수 있다고 경고한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2021~2024년까지 쌀 시장 격리에 2조5000억원이 투입됐는데, 개정안이 시행되면 이 비용이 두 배 가까이 늘어날 수 있다"며 "정부가 매년 1조원씩 수매에 쓰는 구조는 지속 가능성을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남는 쌀을 정부가 전량 사준다는 신호를 줄 경우 농민들이 작목 전환을 꺼릴 수 있고, 이는 오히려 품질 경쟁력을 갖춘 고급쌀 생산 농가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문 교수는 "정치적으로 농민 삶을 개선하겠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농업 진흥 정책과 농가 복지는 분리 접근이 필요하다"며 "생산 보상보다 휴경 보조나 친환경 정책과 연계한 복지 지원이 더 지속 가능한 대안"이라고 제언했다.

임정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도 "양곡관리법 하나만 따로 떼어 보면 시장 왜곡 우려가 있지만, 농안법·농업재해대책법 등과 함께 정합성 있게 설계하면 유럽형 식량안보 체계로 발전시킬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쌀값 안정과 농가 소득 보장을 위해서는 논 타작물 직불제나 가격안정제 등과 연계한 정책 정합성이 핵심"이라며 "단순 수매 확대에 그치지 않고, 식량 자급과 복지 지원까지 고려한 정교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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