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 인터뷰]'오징어 게임'이 황동혁에게 남긴 것

넷플릭스 '오징어게임3' 지난달 27일 공개
넷플릭스 역대 최고 흥행작 마지막 시즌
"만 6년 간 작업 홀가분…허전하고 아쉬워"
"처음엔 해피엔드 생각 쓰다 보니 반대로"
"힘든 세상 다음 세대 위한 행동 고민해"
K콘텐츠 열풍 언어 장벽 허물어 새 역사
"희열·좌절·영광 있어…나를 더 알게 돼"
"함께한 이정재 존경·감사 평생 못 잊어"
"차기작 계획 전혀 없어 일단 쉬고 싶다"

뉴시스
2025년 07월 01일(화) 11:22
[나이스데이] "제 볼을 진짜로 꼬집어 봤어요."

황동혁(54) 감독에게 2021년 9월17일 이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아 달라고 했다. 이날은 '오징어 게임'이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애 공개됐던 날이다. 황 감독은 '오징어 게임'이 공개되고 나서 보낸 일주일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고 했다. 그는 "참 드라마틱한 시간이었다"고 했다.

"금요일에 공개되고나서 토요일과 일요일 국내 언론 평가가 대부분 안 좋았어요. 너무 안 좋아서 당황스러웠죠. 이렇게까지 안 좋나, 라고 할 정도였거든요. 그러다가 월요일즈음부터 해외에서 반응이 조금씩 오기 시작하고 순위가 오르고 미국에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죠. 그러면서 한국에서 반응도 바뀌고 갑자기 전 세계 1위가 된 거예요. 신드롬이다, 현상이다, 라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일주일 간 너무 정신 없이 상황이 바뀌고 돌아가니까 제가 제 볼을 진짜로 꼬집어 봤어요. 참 어리둥절 했거든요."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오징어 게임'은 세계 시리즈 역사를 다시 썼다. 황 감독 말처럼 '오징어 게임'은 신드롬이자 현상이었다. 넷플릭스 역사상 최대 흥행작으로 꼽히는 것과 함께 단일 시즌 흥행으로는 역대 시리즈 최고 흥행작 중 하나로 꼽힌 '왕좌의 게임'을 훌쩍 뛰어 넘었다는 분석도 나왔다. 전 세계 K콘텐츠 붐을 일으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물론이고 영어가 아닌 언어로 만들어진 작품 최초로 에미 시상식 등 영미권 주요 시상식을 휩쓸면서 주류 콘텐츠 시장을 방어하고 있던 언어 장벽을 단번에 무너뜨렸는 평가도 받았다.

아마도 최근 수 년 간 세계 영화·시리즈 시장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온 작품을 고르라고 한다면 '오징어 게임'은 그 명단에서 가장 먼저 언급될 작품일 것이다. 그리고 이제 '오징어 게임' 시리즈는 지난 27일 마지막 여정을 시작했다. 마지막 시즌인 '오징어 게임3'가 공개된 것이다.

"홀가분합니다. 글을 썼던 것까지 치면 시즌3가 나오기까지 만 6년이 걸렸어요. 어찌됐든 다 끝냈으니까 짐을 내려놓은 것 같아요. 이런 큰 기대를 받는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는 데 감사하고요. 그런 의미에서는 허전하고 아쉽기도 하네요."

3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만난 황 감독은 표정은 밝았다. 다만 다소 지친 기색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말 그대로 만 6년 간 전 시즌을 합쳐 에피소드 22개 극본을 홀로 쓰고 연출했다. 쇼러너를 중심으로 감독·작가 10여명이 투입되는 미국 시스템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시즌마다 전 세계를 돌며 홍보를 해야 했다. 최근에도 '오징어 게임3' 프로모션을 위해 약 한 달 간 집에 가지 못하고 미국과 유럽 등을 오갔다. "시차가 계속 바뀌기 때문에 잠을 거의 못자서 몸이 안 좋다"고 할 정도였다. "원래 제가 반응을 꼼꼼하게 보는 편인데 이번엔 안 봤어요. 보면 쉬질 못하니까요."

'오징어 게임3'는 시즌2에서 반란에 실패한 성기훈(이정재)이 절망에 빠진 채로 다시 게임으로 돌아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성기훈은 남은 세 가지 게임 숨박꼭질·줄넘기·오징어게임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한 뒤 게임을 떠난다. 작디 작은 희망 하나를 남겨 놓기는 하나 세상을 긍정하게 하는 결말이라고는 결코 할 수 없다. 황 감독은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할 땐 막연하게 해피엔드를 생각했지만, 집필을 하면서 그렇게 할 수 쓸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기훈이 어떻게든 살아나가서 미국에 있는 딸을 보러 가는 엔딩을 생각했어요. 그런데 글을 쓰면서 이 세상을 돌아보니 그런 세상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이 더 살기 어려워 보였어요. 코로나 사태 이후로 경제적 위기는 커지고 불평등은 더 심해지고. 전쟁 위협은 더 커졌죠. 기후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요. 이런 현실은 저로 하여금 미래 세대에게 무엇을 물려줄 수 있을지 고민하게 했습니다. 젊은 친구들이 꿈과 희망을 잃어간다는 이 시대에 앞선 세대가 이기심을 멈추고 희생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다음 세대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습니다. 기훈의 희생은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닿아 있는 거죠."

국내외 언론 평가는 물론이고 국내외 시청자 평가 역시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한 쪽에선 "제 역할을 다한 시리즈"라고 호평하는 반면 다른 한 쪽에선 "시즌1의 매력을 잃었다"고 지적한다. 황 감독은 "그 모든 반응을 이해한다"고 했다. "워낙 많은 사람이 본 시리즈이다보니까 이 작품에 각자 원하는 게 다 다를 겁니다."

황 감독에게 '오징어 게임' 시리즈를 촬영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과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하나 씩 꼽아달라고 했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기훈이 게임장에서 추락하며 세상을 떠나는 시퀀스를 찍은 마지막 촬영을 꼽았다. 황 감독은 "그 장면을 담기 위해 1년이 넘는 시간을 달려온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제 정말 '오징어 게임'은 끝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면서 황 감독은 이 6년이라는 시간을 내내 함께 달려온 배우 이정재를 향한 각별한 마음을 드러냈다. 두 사람은 전 세계에서 '오징어 게임' 광풍이 분 뒤부터 세계 각지에서 열린 각종 '오징어 게임' 행사에 나란히 서 있었다. 연출자로서 그리고 배우로서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도 같이 했다. 2022년 에미 시상식에서 황 감독이 드라마 부분 감독상을 받을 때, 이정재는 같은 부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시즌2와 시즌3를 찍은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정재씨가 다이어트를 했어요. 찐 채소만 먹었습니다. 기훈이 점점 피폐해져가는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그랬던 겁니다. 저희와 같이 밥도 안 먹었어요. 극한의 다이어트를 해가며 이보다 더 열정적일 수 없게 기훈을 연기해준 거죠. 존경스러웠고 감사했습니다. 그런 헌신은 누구도 쉽게 할 수 없는 거니까요. 참 고마운 존재이고, 아마 정재씨와 함께했던 시간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거예요."

황 감독은 마지막 촬영을 마친 뒤에서야 이정재와 함께 밥을 먹고 술을 마실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그때가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 순간이 참 오래 남아 있네요."

다만 황 감독은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얘기할 땐 딱 하나를 말하지 못하고 매순간이었다고 했다. 그는 "쉬어야 할 때도 쉬지 못해서 너무나 고단한 촬영이었다"고 말했다. "대본을 다 써놓긴 했지만 촬영을 하면서 혹은 배우들과 얘기하면서 떠오르는 것들이 있잖아요. 그럴 때마다 대본을 고쳤어요. 현장에서 고치고, 숙소에 돌아와서 고친 거죠. 그러니까 전혀 쉬질 못하면서 촬영을 한 겁니다. 촬영 막바지로 갈수록 정신적·체력적으로 한계가 왔습니다."

'오징어 게임'은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어떤 곳인지 날카롭게 풍자해 주목 받은 작품이다. 다만 이 작품을 만든 황 감독은 '오징어 게임'을 쓰고 연출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자신을 더 깊이 돌아보게 됐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오징어 게임'을 "참 감사한 작품"이라고 했다.

"이 작품 하면서 참 많은 경험을 했어요. 비판 받을 땐 좌절도 했고, 칭찬 받을 땐 희열도 맛봤죠. 에미 시상식에서 상을 받은 뒤엔 엄청난 부담감에 시달렸고요. 그러면서 결국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생각하게 됐습니다. 성기훈이 어떤 인간인지, 성기훈을 통해서 어떤 이야기가 하고 싶은지 고민하면서 나는 뭘 만들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성찰하게 된 겁니다. 그래서 고마워요. 한땐 저를 우쭐하게 한 적도 있지만 결국 절 겸손하게 만들어줬으니까요."

'오징어 게임3'가 나온지 나흘 밖에 안 됐지만 사람들은 벌써 황 감독 차기작을 궁금해 한다. 그가 시즌1을 마친 뒤 언론 인터뷰에서 '오징어 게임'을 모두 끝낸 뒤엔 영화를 하겠다고 한 적이 있고, 구상하고 있다는 스토리 얼개가 나온 적이 있다. 또 지난달 9일 열린 '오징어 게임3' 제작발표회에서 황 감독은 "'오징어 게임' 스핀오프도 생각해봤다"고 해 황 감독 앞으로 행보에 관심이 모이는 상황이다. 다만 황 감독은 "지금은 완전히 마음을 비워놓고 생각하려 한다"고 했다.

"할리우드에서도 작품 제안이 많이 들어온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제 건강을 회복하는 게 우선이라서 미래에 대한 생각은 전혀 하고 있지 않습니다. 일단은 좀 쉬면서 제 몸의 정상적인 리듬을 되찾고 싶어요. 원래 하고 싶은 영화가 있었는데 그것도 다시 고민 중입니다. 요새 극장 상황이 많이 어려워서 자신감이 떨어졌어요.(웃음)"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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