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리드 위협'의 전선에서 한국이 할 일

손한별 국방대학교 전략학부 교수 기고
"경계 넘나드는 하이브리드 위협…국제 공조로 공동의 대응방안 모색해야"

뉴시스
2025년 08월 27일(수) 11:37
[나이스데이] '하이브리드 위협(hybrid threat)'이라는 용어는 이제 국제안보 담론에서 낯설지 않지만, 그 개념은 여전히 혼재되어 있다. 누군가는 이를 전통적 군사력과 비전통적 수단의 결합이라 하고, 다른 이들은 평시와 전시의 경계가 허물어진 복합적 상태라고 정의한다. 각국의 정부와 학계, 연구자들이 모두 서로 다른 의미로 이 개념을 설명하는 상황에서 정책적 일관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더 큰 문제는 개념이 불분명한 사이에, 위협은 더욱 명확하고 실질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물리적 침공은 2022년에 시작되었지만, 러시아의 영향력 투사는 이미 수년 전부터 심리전, 사이버공격, 정보조작, 경제적 압박 등의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게라시모프 독트린”으로 대표되는 이 전략은 단순한 군사개념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마비시키는 전장의 설계도다.

이러한 전쟁 양상은 러시아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하이브리드 위협은 대부분의 분쟁과 갈등에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전략적 구조다. 전쟁은 더 이상 군사력의 충돌로만 시작되지 않는다. 오히려 전투행동 이전에 정보가 왜곡되고, 여론이 흔들리며, 제도가 교란된다. 우리도 지금 총성 없는 전쟁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도 이런 위협에서 자유롭지 않다. 북한은 여전히 핵과 미사일 도발을 이어가면서도 하이브리드 위협을 일상화하고 있다. 사이버 해킹, GPS 교란, 무인기 침투, 심리전 방송, '쓰레기 풍선' 투척 등은 지금까지는 군사도발로 여겨지지 않았지만, 국민의 일상과 제도의 안전에 실질적인 타격을 준다. 이처럼 물리적인 충돌 없이도 전략적 목표에 접근하는 방식은 회색지대 위협의 범위를 넘어서 '전쟁 이전의 여건조성(pre-battlefield shaping)' 전략이라 불릴 만하다.

이러한 위협을 단지 북한의 특수성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위험하다. 중국도 이미 사드 사태를 통해 경제보복, 심리전, 여론 분열을 조합한 하이브리드 전략을 구사했고, 해양과 사이버 영역에서의 활동을 지속적으로 강화되고 있다. 러시아 역시 유라시아 전략의 연장선에서 한반도 이슈를 점점 더 능동적으로 다루려 하고 있으며, 국내 정치·경제 흐름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시도도 배제할 수 없다. 나아가 일부 우방국들조차 공급망 통제, 기술규제 등을 통해 한국의 전략적 자율성과 국익을 제한하는 위협을 가하고 있다.

이제 위협은 적과 아군을 구분하지 않는다. 명시적 적대보다 모호한 관계 속에서 더 은밀하고 위험하게 작동한다. 따라서 위협을 분류하는 데서 벗어나, 위협의 양상을 구조적으로 이해하고 대응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러한 전략적 대응의 출발점은 국내 대응체계의 전환이다. 지금까지 한국의 안보전략은 군사력 중심, 국방부 중심의 작전적 사고에 의존해왔지만, 하이브리드 위협은 군사 공간 밖에서 발생한다. 인터넷, 통신망, 여론, 민간 인프라, 디지털 플랫폼 등이 모두 전장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국방부뿐 아니라 외교부, 행안부, 과기정통부, 통일부, 교육부, 문체부 등 모든 부처가 하나의 개념 안에서 통합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이와 함께 사회 전체의 회복탄력성(resilience)과 전략적 커뮤니케이션 역량을 갖추어가는 것도 중요하다.

물론 국내 대응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하이브리드 위협은 구조적으로 국제공조를 필요로 한다. 몇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 위협이 경계를 넘나든다. 사이버 공격, 여론 조작, 우주·위성 통제 등은 물리적 국경을 무력화한다.

둘째, 위협의 행위자는 다양하고 연결되어 있다. 국가 행위자 뿐만 아니라 해커집단, 테러리스트, 범죄조직, 심리전 전문가까지 모두 참여한다.

셋째, 대응능력의 격차가 크다. 중소국이나 개도국은 탐지·방어 능력이 떨어지고, 이는 글로벌 불안정의 확산 경로로 활용된다. 넷째, 하이브리드 위협은 민주주의, 인권, 투명성, 개방성과 같은 가치를 공격 대상으로 삼는다. 가치 기반의 연대 없이는 방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2021년부터 외교부가 주최하는 "세계신안보포럼(World Emerging Security Forum, WESF)"은 단순히 국제회의가 아니라 국내 전략과 국제 공조를 통합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주목받는다. 올해는 9월 8일 열리는 이 포럼은 전통적인 전쟁양상을 넘어 하이브리드 위협에 대한 공동의 대응방안을 모색한다. 지난 7월 14일 열린 사전 라운드테이블에서는 국내 전문가들이 한국 사회의 취약성과 과제를 진단했고, 9월 포럼에서는 각국의 정부 관료, 학자, 전략가들이 모여 다자간의 대응전략을 함께 설계할 예정이다. 같은 주간에 국방부가 주최하는 "서울안보대화(SDD)"와의 연계는 한국이 하이브리드 위협 대응을 주도하려는 의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오늘날의 전쟁은 더 이상 병력과 무기의 충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전투보다 먼저 여건을 조성하는 설계가 시작되고, 전장은 여론, 플랫폼, 가치, 제도, 일상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제 한국은 개별 위협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수준을 넘어서, 능동적으로 위협을 예측하고 전략을 설계·조율하는 주도국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신안보포럼이 국제사회와 함께 미래의 안보를 공동 설계하는 장이자, 한국이 새로운 안보 네트워크의 중심축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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