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도 병원 못 간다"…지방 이주노동자, 의료 사각지대 '방치'

지정병원 수도권 편중에 전문 통역도 부재…치료 제때 못 받아
전문가 "충분한 의료 인력 공급해 지방 필수 의료 정착 시켜야"

뉴시스
2025년 10월 10일(금) 10:59
[나이스데이] # 전북 전주의 한 공장에서 일하는 방글라데시 노동자 A(27)씨는 지난 2월 손가락이 부러졌지만 제때 치료를 받지 못했다. 외국인 진료 지정 병원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고, 결국 약만 먹으며 버티다 뒤늦게 병원을 찾았다. 이미 치료 시기를 놓친 탓에 수술까지 받아야 했다.

섹알마문 이주노동자조합 부위원장은 "외국인 진료 병원은 대부분 의료관광 목적이라 실제 체류 노동자가 이용하기 어렵다"며 "많은 노동자가 결국 본국으로 돌아가 치료를 받는다"고 말했다.

10일 뉴시스 취재를 종합하면, 지방에 거주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의료 접근성은 수도권보다 훨씬 열악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외국인환자 유치의료기관 3736곳 중 62.9%를 차지하는 2351곳이 서울에 몰려 있다. 하지만 이들 역시 상당수가 의료관광 목적이라 체류 노동자들이 이용하기 어렵다.

지방은 상황이 더 열악하다. 의료기관 자체가 부족한 데다 통역 등 지원 인프라도 사실상 부재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A씨처럼 어렵게 병원을 찾아도 의사의 설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치료가 늦어지는 사례가 적지 않다. 전문 통역 인력이 부족하고, 설령 있더라도 의학적 내용을 충분히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민간 중심 의료 체계와 취약한 지방 인프라가 이주노동자의 의료 사각지대를 심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부 교수는 "지방 의료 인프라가 수도권에 비해 열악한 것은 내국인도 비슷하게 겪는 상황"라면서 "소득이 적은 이주 노동자의 경우 (병원 측이) 의료를 제공할 유인이 적어 접근성의 격차가 더 심각하게 드러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불법 체류 등 제도권 밖에 놓인 이주민 현실과 소극적인 국가 이민정책이 의료 사각지대를 더 키우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취업 비자가 없는 노동자는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해 제도권 의료 서비스 이용에 큰 제약을 받는다고 덧붙였다.

이주열 남서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도 "정상적인 취업 비자가 없는 이주 노동자 상당수가 건강보험증을 갖지 못해 의료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며 "이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곳은 지역 교회에서 제공하는 의료 봉사 서비스 정도"라고 말했다.

송기민 한양대 보건학과 교수는 "불법 이민자나 불법 취업자는 제도권 의료 이용이 제한될 수 있다"며 "한국이 여전히 방어적인 이민 정책에 머무르면서 합법적인 취업 경로를 열어주지 않는 것이 의료 접근성 문제와도 연결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외국인뿐 아니라 우리 국민조차 의료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상황이지만, 최소한 외국인 노동자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 품격에 맞는 인도주의 차원에서 보장돼야 한다"며 "우리 헌법은 어떤 인간이든 모두 생명 존중권을 갖고 있다는 점을 기본 정신으로 삼는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장기적 관점에서 충분한 의료 인력 공급과 통역 인프라 확충을 통한 지방 의료 정착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정 교수는 "지금 수준의 의료 인력으로는 지방까지 갈 여력이 없다"라면서 "충분한 의사 인력을 공급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필수 의료가 지방에 자리 잡게 하는 데 필요한 조건"이라고 했다. 이를 통해 내국인뿐만 아니라 이주 노동자들이 놓여있는 의료 사각지대를 완화하는 영향을 기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교수도 "지자체나 공공기관 차원에서 필요할 때마다 투입할 수 있는 통역사 풀을 운영하거나 장기적으로는 AI 통역 기술이 보완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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