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 면한 '통일교 실세' 정원주, 재판서 '로비 주도' 드러날까 특검, 공소장에 한 총재의 정교일치 교리 적시하며 뉴시스 |
2025년 10월 23일(목) 17: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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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건진법사' 전성배씨 측이 입장을 바꿔 특별검사팀에 통일교 측의 청탁 금품을 제출했듯 통일교 재판에서 아직 수사가 다 끝나지 않은 '국민의힘 당권 개입 의혹' 등 사건에 대한 추가적인 전말이 드러날지도 주목된다.
23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 안팎에서는 윤석열 정권 로비 의혹 당시 전 총재 비서실장이었던 정씨가 로비를 총괄·지휘한 교단의 실권자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교주' 한 총재가 구속된 것과 달리 정 전 실장은 구속을 면했다.
김건희 특검팀(특별검사 민중기)이 작성한 한 총재와 정씨 등의 공소장을 보면, 정씨는 지난 2015년께부터 비서실장을 맡아 한 총재의 업무를 보좌했다고 명시돼 있다.
특검은 한 총재가 내세운 정교일치 이념을 범행의 배경으로 본다. "참부모가 치리(治理, 도맡아 다스림)하는 평화 세계인 천일국을 완성하기 위해 자신의 뜻에 따라 치리되는 국가인 신(神)통일한국의 기반을 2022년까지 만들고, 2027년까지 안착시키려 했다"는 게 공소장의 내용이다.
정씨는 공소장 속에서 한 총재의 범행 전반을 공모한 것으로 기재돼 있다. 한 총재의 종교적 구상을 실현하고 통일교의 이권과 영향력 확대를 위해 ▲비무장지대(DMZ)에 유엔 제5사무국 유치 및 평화공원 설치 ▲아시아 태평양 유니언 설립을 위한 캄보디아 메콩피스파크 사업(MPP) ▲한일 해저터널 등의 사업을 추진했다고 적혔다.
이들 사업은 국가의 정책적 지원, 공적 자금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이에 한 총재와 정씨는 윤영호 전 세계본부장을 통해 유력 대선 후보였던 윤석열 전 대통령의 최측근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에게 접촉해 불법 정치자금을 건네는 등 유착 관계를 맺었다는 게 특검의 시각이다.
정씨의 이름은 이후에도 보고와 승인 주체로 한 총재와 함께 등장한다. 윤 전 본부장이 대선 이후 건진법사 전성배씨가 김건희 여사와 친윤 정치인들에게 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고 보고하자, 한 총재와 정씨는 전씨를 통해 김 여사와 친분을 유지하며 각종 프로젝트와 행사의 편의를 제공받으라고 그에게 지시했다는 내용도 그 중 하나다.
그러나 통일교 내부에서는 정씨 역할이 공범 이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통일교 산하 무용단 출신인 정씨는 1990년대 귀국해 한 총재의 수행비서를 맡으면서 얻은 신뢰를 바탕으로 2인자 자리에 올랐다는 견해가 많다. 한 총재가 남편 문 총재가 숨진 후 3남 등과 '골육상쟁'이 벌어지자 실권을 위임할 인물로 믿던 정씨를 택했다는 것이다.
정씨는 '윤 정권 로비 의혹'의 전달책으로 지목된 윤 전 본부장을 비서실 사무총장 등 처음 발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소장에서 윤 전 본부장은 통일교 고위 직책을 2023년 5월까지 맡고 있었다고 나오는데, 정씨와의 권력 다툼에서 밀려나 선문대 부총장직으로 옮겼다는 시각이 많다.
특검은 정씨가 한 총재에게 보석과 예물, 사비를 상납한다는 명목으로 신도 헌금으로 조성된 기금과 공익 목적에 쓸 교단 자금을 빼돌렸다(횡령)는 혐의도 공소장에 썼다.
정씨는 2022년 4월~2023년 5월에 건축 목적의 천승기금, 한반도 평화통일 활동에 쓸 목적의 신통일한국 통일기금에 들어갈 합계 5억여원의 금전을 총 22차례에 걸쳐 한 총재에게 상납하라 지시하며 빼돌린 혐의를 받는다.
한 총재의 사비를 마련한다는 목적으로 2022년 1월~2023년 5월 사이 선교활동비 목적으로 쓰는 것처럼 서류를 허위로 꾸며 미화 69만8600달러(한화 9억원)을 가로챈 혐의, 2021년 1월~지난해 9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유지재단 등 기관 자금 총 1억1000만원을 3차례에 걸쳐 한 총재의 예물비 명목으로 빼돌린 혐의도 받는다.
교단 안팎에서는 지난 8월 취임한 세계선교본부장 A씨,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유지재단 이사장 B씨가 정씨의 측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한 총재 구속 이후에도 교단 관계자들 사이에서 정씨의 위세가 여전하다는 말이 나온다.
비록 통일교가 공식 기구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지만, 통일교 비상대책위원회는 한 총재의 특검 진술조서를 입수해 '(로비 행위 등은) 정원주가 주도적으로 진행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는 내용을 자체 보고서에 적은 바 있다. 변호인단이 한 총재가 아닌 정씨를 변론하는 데 더 힘을 기울인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신도들 사이에서는 정씨에 대한 성토 여론도 일고 있다고 알려졌다.
이처럼 통일교 내부 분위기가 심상찮은 만큼 재판에서 한 총재를 방어하기 위해 정씨에게 책임을 부각하는 새로운 증거나 진술을 제시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우인성)는 한 총재와 정씨 등에 대한 첫 공판준비기일을 오는 27일 오전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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