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의료 처벌 완화' 기준 논란…무엇이 중과실?

의료분쟁조정법, 국회 본회의 통과
12대 중과실 범위 모호하고 과도해

뉴시스
2026년 04월 27일(월) 10:03
대구 시내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들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이 없습니다.) 2025.09.01. [email protected]
[나이스데이] 고위험 필수의료 분야에서 의료사고가 발생해도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내용의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가운데 예외 조항인 '중과실' 기준을 놓고 의료계가 우려의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형사 특례 적용 예외 사유에 포함된 '중대한 과실'의 기준이 모호하고 범위가 과도해 확대 해석될 소지가 있는 등 오히려 필수의료 기피 현상을 더 심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27일 보건복지부와 의료계 등에 따르면 중대한 과실이 없는 고위험 필수의료 행위로 인한 의료사고에 대해 의료인 등이 설명 의무를 충족하면 업무상과실치사상죄의 형을 감면하는 내용의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의료분쟁조정법)이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구체적으로 책임보험 가입, 설명의무 이행, 손해를 전액 배상하는 경우에는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하고 기소되는 경우에도 재판부가 정상을 고려해 임의적으로 형을 감면할 수 있도록 했다.

또 현행 반의사불벌 특례를 확대해 의료사고로 상해 결과가 발생한 경우에는 피해자의 명시한 의사에 반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했다. 특례 적용 대상인 '필수의료'는 중증·소아·응급·분만·외상 등 생명과 직결되거나 난이도가 높은 행위로 정의했다.

형사특례 적용에서 제외하는 중대한 과실이 인정되는 경우는 12개 유형으로 지정했다. 12개 유형은 ▲설명이나 동의 내용과 다른 수술·수혈 ▲중대한 위험에 대한 설명과 동의 부재 ▲중대 위험에 모니터링, 처치, 전원 미비 ▲기본적 안전관리 의무 위반 ▲의료기구 체내 잔존 ▲지도 및 감독 소홀 ▲의학적 진료지침 위반 ▲1회용 의료기구 재사용 ▲환자 및 약품 용량 착오 ▲약물 투여전 과민반응조사 미실시 ▲다른 혈액형 수혈 ▲다른 환자나 다른 부위 수술 등이다.

중대 과실 여부 판단은 의료사고심의위원회가 판단한다. 심의위는 위원장을 비롯해 의사회·의료기관단체 추천 5명, 시민·소비자단체 추천 5명, 법원행정처·법무부·대한변호사협회 추천 5명, 중앙행정기관 공무원 3명, 중재원장 추천 2명 등 20명으로 구성된다.

고위험 수술 등이 많은 필수의료 분야 전공을 기피하는 현상이 이어지자 정부가 형사 처벌 부담 완화를 위해 내놓은 대책이지만, 정작 의료계 내부에서는 오히려 의료 분쟁을 더 부추길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황규석 서울특별시의사회 회장은 "중대한 과실 이라는 단어는 판사, 검사 등 법률가의 책임제한을 불가능하게 하는 용어로  법률적으로 매우 부적절한 단어"라며 "자동차사고처리 특례법처럼 '예외조항'으로 표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2개 중과실 가운데 '환자에게 사망 또는 중대한 신체 손상이 발생할 수 있음을 의학적으로 예측 가능했음에도 의학적으로 필요한 진단, 모니터링, 처치 또는 전원을 하지 아니한 경우'(3호) 조항에 대해 "광범위하게 해석될 여지가 상대적으로 커보인다"고 말했다. 자칫하면 거의 모든 의료 사고에서 중과실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황 회장은 "환자의 사망 또는 중대한 신체 손상이 발생할 수 있는 위험도가 높은 의료행위에 필요한 기본적 안전관리 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한 경우(4호) 역시 중대하게 위반했다는 정의가 모호하다"며 "의학적 진료지침 또는 통상적으로 수용되는 진료에서 현저히 벗어난 의료행위를 한 경우(7호)도 '현저하다'는 범위가 모호하다"고 말했다.

또 "10호의 약제 투여 전 필수적인 과민반응조사를 하지 아니한 경우는 모든 약을 사전에 과민반응조사를 할 수 없고, 의학적으로 모든 약을 사전에 검사해야 할 필요도 없다"며 "이러한 문제점은 심의위에서 결정해 해결할 예정이라고 하지만 의료의 특성상 조금씩 서로 다른 수많은 사례들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법안 통과를 앞두고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의료행위의 설명이 없는 경우, 진료지침에서 현저히 벗어난 의료행위 등 6개 조항을 삭제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관철되지 않았다.

김성근 의협 대변인은 "12대 중과실 부분이 해석의 여지가 넓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중대과실을 심의하는 심의기구에 대한 의구심도 여전히 지적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한성존 대한정공의협의회(대전협) 회장은 "중과실 이라는 모호한 개념으로 생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중증·핵심 의료 현장에서는 최선의 진료에도 불구하고 불가피한 나쁜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며 "무너져 가는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서는 법안 및 하위 법령에서 중과실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규남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은 "개정안은 '중과실이 없을 때만 형사기소를 면제한다'고 명시했지만, 무엇이 중과실인지에 대한 기준은 어디에도 없다"며 "진단의 오류나 진료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한 합병증을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삼는 나라는 오직 대한민국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환자 측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중과실로 몰아갈 것으로 보이고 경찰과 검찰의 강압적인 수사는 이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결국 연쇄적인 진료 축소와 필수의료 기피 현상만 가속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의료분쟁조정법 12대 중과실 중 6호인 '의료행위를 전공의 또는 다른 보건의료인에게 지시한 후 감독을 하지 아니한 경우' 조항에 대해서도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의료계의 한 인사는 "수술 결과가 좋지 않아 환자가 문제를 삼을 경우 지도 전문의가 그 자리에 같이 있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가 중과실이 될 수 있다"며 "전공의 수련 과정에서 억울하게 전과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어은경 순천향대부천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중과실의 정의가 의도나 위중함보다는 결과에만 치우쳐 있어 단순 실수만으로도 중과실로 해석될 가능성이 높다"며 "단순 실수와 중대한 일탈을 구분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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