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사보다 죄송한 마음"…170만 미취업 청년들 침울한 '어버이날' 어버이날에 커지는 압박…취업·결혼 질문 폭탄 뉴시스 |
| 2026년 05월 08일(금) 10: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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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 준비 2년 차인 오채원(24)씨에게 어버이날은 감사의 마음과 함께 미안함이 겹쳐지는 날이다. 지난해엔 전업 수험생 생활을 이어오며 부모님 지원에 의존하고 있던 그는 가족 모임이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무거워진다고 했다.
오씨는 "사촌 형제들이 공무원이나 회계사 등 이른바 '번듯한 직업'을 갖고 있는데 저는 늘 '다음 타자'처럼 평가받는 느낌"이라며 "가족 모임이 늘 부담스럽다"고 털어놓았다.
취업준비 2년 차인 이정현(26)씨 역시 어버이날이 반갑지만은 않다. 그는 지난해 한 대기업 최종 면접까지 올라갔지만 끝내 탈락했다. 이후 자신감이 흔들리고 무기력감이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이씨는 "평소엔 괜찮다가도 친구들이 어버이날에 부모님 선물을 챙기는 모습을 보면 압박감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는 "인턴과 취업 준비를 병행하며 몇 달 동안 누구보다 열심히 준비했는데 결과적으로 남은 건 '미취업 청년'이라는 상태뿐"이라며 "부모님을 만나면 취업 이야기나 미래 계획 이야기가 나올까 긴장된다"고 털어놨다.
감사와 효의 의미를 되새기는 어버이날이 일부 청년에게는 '비교와 평가의 날'로 다가오고 있다. 장기화된 취업난 속에서 미취업 상태가 길어질수록 가족 모임 자체를 피하고 싶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20~30대 미취업 청년은 약 171만명에 달한다. 실업자 45만명, 특별한 구직 활동을 하지 않는이른바 '쉬었음 청년' 72만명, 취업준비생 54만명 규모다. 이는 전체 20~30대 인구의 약 14% 수준으로 청년 7명 중 1명은 노동 시장 바깥에 머물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단순한 취업난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취업 지연이 장기화하면서 청년 세대 전반의 삶과 관계, 자존감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 문제로 번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가족 중심 문화 속에서 어버이날과 같은 모임은 심리적 압박감을 키우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취업 여부, 결혼, 연봉, 미래 계획 같은 민감한 질문이 반복되면서 스스로 위축된다는 것이다.
취업 준비생 현승진(27)씨는 "가족들을 만나면 '어디 취업할 거냐', '결혼은 언제 할 거냐' 같은 질문을 듣게 된다"며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계속 설명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주변에서 다들 '천천히 하면 된다. 조급해하지 말라'고 이야기하지만 준비하던 것이 잘 안 될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예민해진다"며 "취업에 대한 압박이나 부모님이 부담감을 주실 때 불안감이 더욱 가중된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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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을 개인의 의지 부족이 아닌 사회 구조적 모순으로 진단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제 규모와 생활 수준은 높아졌는데 청년들이 미래를 설계할 수 있을 만큼 질 좋은 일자리는 부족하다"며 "'쉬었음'은 단순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해봐야 소용없다'는 인식 속에서 나타나는 사회적 결과"라고 설명했다.
가족 중심 문화 역시 청년들에게 압박으로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우리 사회는 여전히 가족 간 비교와 사회적 성취를 중요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강하다"며 "평범한 직장조차 자랑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문화 속에서 청년들이 더 위축될 수 있다"고 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역시 청년 고용 문제를 노동시장 수요와 공급의 미스매치라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높은 학력 수준에 비해 그에 맞는 일자리가 충분히 제공되지 않는 구조"라며 "취업 실패 경험이 반복되면 단념과 자기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어 "쉬었음 청년에 대한 낙인과 배제가 장기화되면 우울감, 사회적 고립을 넘어 정치·사회적 불안으로까지 연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단순한 일자리 숫자 확대를 넘어 청년의 삶 전반을 지탱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쉬었음=실패’라는 사회적 낙인을 줄이고 다양한 진로와 이행 과정을 인정하는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청년들이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소득과 삶의 기반을 보장해야 한다"며 "단순 인턴 확대가 아니라 지속 가능하고 발전 가능성이 있는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방향으로 정책이 전환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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