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도 검토하겠다는 '반도체특별법'…노동계 청천벽력

李 "기업이 살아야 나라 경제도 산다"
양노총 반발…"52시간제는 원인 아냐"
근기법 무력화 우려…건강권 문제도
특별연장근로 있으나 신청 건수 미미
"노동시간 제도 위험에 빠뜨릴 수 있어"

뉴시스
2025년 02월 04일(화) 11:12
[나이스데이] 반도체 업계를 주 52시간제의 예외로 두는 '반도체특별법'이 더 이상 여당의 전유물이 아니게 됐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검토 의사를 밝히며 전향적 태도를 시사하면서다.

이에 따라 법안 추진에도 힘이 실릴 모양새다. 다만 특별법 발의부터 거세게 반발해 온 노동계는 여전히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충돌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의 행보를 두고 "청천벽력"이라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4일 정치권 등에 따르면 전날(3일) 이 대표 주재로 열린 민주당의 반도체특별법 정책토론회에서 이 대표는 "1억3000만원이나 1억5000만원 이상의 고소득 연구개발자에 한해, 그리고 본인이 동의하는 조건에서 특정 시기에 집중하는 정도의 유연성을 부여하는 게 합리적이지 않느냐고 하는 의견에 저도 많이 공감한다"고 말했다.

특별법의 기반이 된 미국의 '화이트칼라 이그젬션(고소득 근로자 52시간제 제외)'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면서 이 대표는 "기업이 살아야 나라 경제도 산다"며 "지금은 그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특별법의 최대 쟁점인 근로시간 특례 관련 입장이다. 근로시간 상한제의 예외로 규정해 기업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취지의 조항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등 노동계는 지난해 11월 여당인 국민의힘이 해당 법안을 발의했을 때부터 반대 입장을 공고히 했다. 근로기준법을 무력화하고 장시간 노동을 심화시킨다는 주장에서다.

민주당도 당시 노동계와 궤를 같이했으나 이 대표가 최근 기업의 성장을 강조하는 등 '우클릭' 행보를 보이며 전향적 태도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양대노총은 전날 기자회견을 열고 이 대표를 규탄했다. 반도체특별법을 추진한다면 윤석열 정권과 매한가지라는 노골적 지적도 아끼지 않았다.

이들은 특별법 관련 의견서를 발표하며 입장을 명확히 했다.

양대노총은 의견서를 통해 공통적으로 ▲근로기준법을 무력화한다는 점 ▲이미 근로시간 연장을 위한 제도가 마련돼 있다는 점 ▲근로자 건강권을 침해한다는 점 등을 근거로 꼽았다.

이들은 우선 "근로기준법상 노동시간 법제의 기본원칙과 규율체계를 무시하는 것"이라고 했다.

근로기준법은 '강행' 규정이 주를 이룬다. 제3조는 해당 법이 정하는 근로조건이 '최저기준'이므로 더 낮출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장시간 노동으로부터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해 놓은 셈이다.

또 근로시간 제한이 산업 경쟁력 약화의 원인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이 나온다. 삼성전자 등 반도체 업계는 기존의 '특별연장근로'를 통해 근로시간을 늘릴 수 있다.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는 2022년 최대 3개월 간 주 64시간까지 근로를 허용하는 특별연장근로 제도를 발표한 바 있다.

소재, 부품 및 장비의 연구개발 등을 하는 경우 고용부 장관이 국가경쟁력 강화 및 국민경제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연장이 가능하다. 반도체 업종의 연구개발도 포함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런데 실제로 반도체 연구개발(R&D)을 위한 특별연장근로 신청은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고용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월 1일부터 11월 30일까지 특별연장근로 신청 건수는 총 6111건인데, 이 중 연구개발을 위한 신청은 26건(0.4%)에 그쳤다.

반도체 산업의 위기가 근로시간 상한제 때문이라는 특별법 찬성 측의 주장에 반발이 나오는 이유다.

이 밖에도 근로기준법은 선택근로시간제, 탄력근무제, 재량시간제 등을 활용해 근무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 근로자들의 건강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미 장시간 노동에 노출돼 있다는 주장이다.

한국노총은 "반도체 노동자들의 뇌심혈관계질환의 산재 발생율은 전체 제조업 대비 2배 이상 높다"며 "오히려 노동시간 단축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했다.

또 이용우 민주당 의원이 고용부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해 10월 말까지 총 23만8752시간의 특별연장근로를 실시했다. 반면 동종 업계인 SK하이닉스는 특별연장근로를 실시한 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특별법 도입이 근로시간 제도 개편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미 주52시간 상한제는 많이 무너졌다"며 "예외가 늘어나 있는 상태라 더 늘리는 것은 노동시간 제도 자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 이 대표가 시사한 화이트컬러 이그젬션을 두고 "연봉을 기준으로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연봉이 높아도) 임원, 고소득 전문직과 동일한 자율성을 누리는 존재가 아닌 엄연한 종속 노동자"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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