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타격' 기업에 35조 풀지만…은행 건전성 우려 '딜레마' 취약기업 금융지원 늘리지만, 건전성 관리도 병행 뉴시스 |
2025년 04월 11일(금) 11: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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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연초 은행들은 경기 둔화 국면 속 기업대출 연체율이 치솟자 취약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 문턱을 높이는 전략을 취했다. 특히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정책으로 보통주자본비율(CET1) 관리를 위해 위험가중치가 높은 비우량 기업 대출에 보수적으로 접근했다. 보통주자본비율을 일정 수준(13%) 이상으로 관리하려면 위험가중자산을 낮추는 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실제 은행들이 대출 문턱을 높이면서 기업대출은 큰 폭 줄었다. 한국은행의 '3월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은행 기업대출은 2조1000억원 감소했다. 중소기업(-1조4000억원)뿐 아니라 대기업(-7000억원) 대출까지 감소한 영향이다. 3월 기준 기업대출이 감소한 것은 지난 2005년 3월(-1조2000억원) 이후 20년 만에 처음이다.
통상 기업들이 연말 재무제표 관리를 위해 대출을 줄였다가 연초에 다시 늘리는 경우가 많다. 분기말 효과를 감안하더라도 3월 기업대출이 줄어든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이다. 대내외 불확실성으로 기업들의 자금 수요가 줄어든 가운데, 은행들이 신용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면서 대출이 크게 쪼그라든 것이다.
문제는 미국의 관세정책으로 대외 의존도가 높은 국내 수출·중소기업들이 직격탄을 맞게 된 점이다. 기업의 수출 실적이 줄면 대출상환 능력이 나빠지게 되고, 대출 건전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은행 입장에서는 대출 금리 상승이나 한도 축소 등으로 대응해야 하지만 이럴 경우, 기업들의 자금난이 가중될 수 있어 마냥 대출 문턱을 높이기도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금융당국과 정치권에서는 잇따라 은행권에 자금 지원 확대를 주문하고 나섰다. 지난 9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5대 은행장들을 소집해 미국의 관세 조치에 따른 금융지원 방안 등에 대해 논의했다. 윤한홍 국회 정무위원장은 "미국의 관세 부과로 중소기업, 소상공인, 자영업자 등의 어려움이 크다"며 "어떻게 지원해 나갈지 함께 고민하자"고 말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도 지난 7일 금융지주 회장들을 만나 "금융시장 안정과 기업 등 실물 부문에 대한 자금 지원에 적극적인 역할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KB·신한·하나·우리금융 등 4대 금융지주는 수출기업과 중소기업·소상공인 등을 위해 금리우대 등 약 35조원 규모의 금융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기업들의 유동성을 확보하고, 금융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건전성 관리는 은행들이 고삐를 놓을 수 없는 과제다. 일단 취약업종에 대한 금융지원에 나서겠지만, 자금 시장을 철저하게 모니터링하면서 대출 부실 징후에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미 관세로 직접적 타격을 입는 업종부터 지원하고, 시장 상황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했다.
은행권에서는 무엇보다 취약기업에 대한 원활한 자금 공급을 위해 기업대출에 적용하는 위험가중치를 하향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기업대출은 가계대출보다 위험가중치가 높아 은행들이 이를 많이 취급할 수록 자본비율 관리는 더 어려워진다.
금융당국도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 은행의 자본규제 완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관세 부과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에 자금 지원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은행 자본규제 관련 인센티브 부여 방안을 검토해달라"고 밝힌 바 있다. 일각에서는 관세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자동차·반도체 협력업체 등 대출에 대한 위험가중치를 차등화하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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