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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워하면 언젠간 만나게 되는 / 어느 영화와 같은 일들이 이뤄져가기를 ♪♬"
톱 가수 겸 배우 아이유(IU·이지은)가 최근 발매한 세 번째 리메이크 앨범 '꽃갈피 셋' 타이틀곡 '네버 엔딩 스토리' 뮤직비디오엔 기존 그리움을 대표하는 대중문화적인 요소가 가득하다.
원곡은 기타리스트 겸 작곡가 김태원이 이끄는 그룹 사운드 '부활'이 2002년에 발표한 정규 8집 '새벽'의 타이틀곡이다. 이 팀의 원년 멤버였던 가수 이승철이 13년 만에 부활에 합류해 불렀던 곡으로 큰 인기를 누렸다. 김태원이 작사·작곡했다.
재해석된 '네버 엔딩 스토리'는 아이유의 '러브 윈스 올'의 작곡자 서동환이 자신의 주특기인 피아노, 스트링 편곡을 살려 좀 더 아련하다. 추억을 더 몽환적으로 그려낸 것이다.
"힘겨워한 날에 너를 지킬 수 없었던 / 아름다운 시절 속에 머문 그대이기에"라는 노랫말이 그래서 더 애틋하다. 아이유 역시 후렴구에 감정을 터뜨리기보다 절제한다. 초여름에 어울리는 청랭함을 더해 뭉클함의 농도를 짙게 했다. 맑아서 더 슬픈 그런 하늘을 보는 것처럼.
허진호 감독의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1998)를 오마주한 뮤직비디오는 그래서 정답이다. 걸출한 배우 한석규·심은하 주연의 이 영화는 절제된 그리움, 애틋함의 속살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불치병에 걸려 죽음의 골목으로 천천히 내몰리는 사진사 '정원'(한석규 분)과 인생의 봄에서 생동감 넘치는 여름의 자락에 들어선 주차단속요원 '다림'(심은하 분)의 서로에 대한 알뜰함의 프레임이 조금씩 어긋나가면서 두 사람은 동시에 성숙한다.
"내 기억 속에 무수한 사진들처럼 사랑도 언젠가는 추억으로 그친다는 걸 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신만은 추억이 되질 않았습니다.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게 해준 당신께 고맙다는 말을 남깁니다"는 정원의 마지막 대사를 외우고 있는 영화 마니아들이 한 두 명이 아닐 것이다.
아이유·허남준이 주연하고 아이유 대표곡 '팔레트', '밤편지' 뮤직비디오를 함께했던 이래경 감독이 연출한 '네버 엔딩 스토리' 뮤직비디오는 또 다른 '8월의 크리스마스'다. 아이유의 직업은 영화처럼 주차단속요원인데, 허남준은 사진사가 아닌 작은 만화방 주인이다.
왜 사진관이 아닌 만화방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뮤직비디오 속에서 주요 모티프인 이미라 작가의 순정 만화 '인어공주를 위하여'도 그 중 하나가 아닐까 추정 가능하다. 이슬비, 서지원(사실은 푸르매), 백장미의 삼각관계를 다룬 작품이다. 마지막으로 쓴 편지마저 전해지지 않는 백장미가 사실 인어공주의 입장일 텐데, '네버 엔딩 스토리' 속 아이유가 빌린 '인어공주를 위하여' 4권도 허남준에게 전해질 지 미지수다.
아이유는 허남준이 흘리고 간 자신의 증명사진을 그 만화책에 꽂아 반납함에 넣지만, 유리창 너머로 만화방 안을 아득하게 쳐다보는 아이유의 흔들리는 눈빛이 불완전한 결말을 대변하는 듯하다. 이 만화책은 최근 아이유의 생일카페 내 책장 안에 놓여 있던 책 중 하나이기도 했다.
허남준이 읽고 있던 만화 '드림(Dreams)'은 그럼 무엇을 뜻하는가. 해당 작품은 만화 '4번타자 왕종훈'(일본판 제목 4P田中くん)으로 유명한 나미 다로(七三太朗)·가와 산반치(川三番地) 콤비의 또 다른 야구 만화다. 야구 하나만 파고드는 천재에 대한 이야기인데, 극 중 허남준의 외골수적 성향을 반영한 것이 아닌가 싶다.
여름은 덥고 습하면서 눅진한 아련함으로 기억된다. 그래서 여름의 추억은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오기 힘들다. 그러나 추억에 머무는 게 아닌, 추억을 갖고 가야 삶도 앞으로 나아간다. 그래서 우리는 아름다운 시절에 머문 그대와 아득한 인사를 해야 한다.
아이유가 작년 9월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펼친 '2024 아이유 HEREH 월드 투어 콘서트 앙코르 : 더 위닝'에서 들려준 '바이 서머(Bye summer)'처럼. 서동환이 멜로디를 붙이고, 아이유가 노랫말을 지은 이 곡은 "달려가는 우리를 뒤따라 오던 밤 아래 그 더위까지 (…) 바이 서머 인사할 때야 서늘한 바람이" 같은 애틋하면서 청량한 대목이 넘쳐난다. 작년에 투어를 하면서 인생에서 가장 긴 여름을 보낸 그는 원래 여름이 싫었는데, 여름을 좋아하게 됐고 그래서 '바이 서머'도 내놓게 됐다. 결국 아이유 '네버 엔딩 스토리'는 기억을 위한 여름의 송가(送歌)가 된다.
이처럼 아이유의 곡 재해석은 노래만 다시 부르는 게 아니라, 기존의 대중문화와 지금의 자신이 주고 받는 영역으로 확대하면서 우리의 대중문화 전체를 환기하는 영역에 이른다.
'꽃갈피'(2014), '꽃갈피 둘'(2017)을 통해 아이유가 우리 대중음악의 '사려 깊은 연인'으로 등극한 이유다. 그래서 '꽃갈피는 어차피 불가피'하다. 이번 '꽃갈피 셋'에서도 아이유는 애인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이달 내내 '꽃갈피 어차피 불가피' 시리즈를 이어간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