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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여권과 진보진영에선 "실질 세부담은 여전히 낮아 조세 형평성 제고가 우선"이라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는 반면, 야권에선 "명목세율 인상 자체가 기업 투자에 부정적 신호를 준다"고 비판하며 팽팽히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법인세 개편은 정부의 이념 지향을 제시하는 상징적 의미가 있는 만큼 향후 국회 심사 과정에서도 논란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 '전 과표구간별 법인세율 1%p 인상' 세제개편안 발표
10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달 31일 모든 과세표준 구간별 법인세율을 1%포인트(p)씩 인상하는 내용을 담은 '2025년 세제개편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법인세율은 ▲2억원 이하 10% ▲2억원 초과~200억원 이하 20% ▲200억원 초과~3000억원 이하 22% ▲3000억원 초과 25%로 강화됐다.
여기에 법인세의 10%를 추가 부과하는 지방소득세까지 포함하면 실질 세율은 10.1%~27.5%에 이르게 된다.
정부는 이를 통해 연간 약 4조3000억원의 추가 세수를 확보, 초혁신 기술 분야 투자와 재정 지속가능성 확보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여권·진보진영 "법인세 인하와 기업 투자 연결성 부족"
여권과 진보진영에서는 법인세 인상이 감세로 약화된 세입 기반을 정상화하는 조치이며, 실효세율이 여전히 낮아 기업 경영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크지 않다고 주장한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간사인 정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법인세 인상과 관련해 "과거 노무현·이명박 정부 때의 경험으로 볼 때 법인세 인하와 기업의 투자가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았다"며 "효과 없는 법인세 인하를 다시 정상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조국혁신당 주최 '2025 세제개편안 긴급좌담회'에서 김현동 배재대 교수는 "OECD 기준 한국의 실효세율(24.9%)은 호주·일본·독일보다 낮아, 구간별 1%p 인상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유호림 강남대 교수도 같은 좌담회에서 "이번 세제개편안은 증세가 아니라 실패한 감세정책을 바로잡는 조세구조 정상화"라며 "법인세 인상이 투자 위축이나 고용 감소로 이어진다는 재계 주장은 실증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실제 나라살림연구소가 지난 7일 발표한 '법인세 실효세율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법인세 최고세율이 25%였던 2018~2022년에도 전체 기업의 평균 실효세율은 16.33%에 그쳤다.
2023년엔 세율이 24%로 인하됐지만 실효세율은 오히려 14.42%로 더 낮아졌다. 명목세율과 실효세율 간 격차는 2013~2017년 7.07%포인트(p)에서 2023년 9.58%p까지 확대됐다.
보고서는 "과세표준 3000억원 초과 구간에만 최고세율이 적용되면서 실제로 최고세율을 적용받는 기업은 전체 100만여개 중 100여개에 불과하다"며 "실효세율은 여전히 낮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또 보고서는 법인세 인상이 기업 경영을 위축시킨다는 주장도 통계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한국은행 기업경영분석에 따르면, 최고세율이 인상된 2018~2022년 기업들의 평균 매출액증가율은 7.08%, 총자산증가율은 8.44%로, 이전 5년(3.1%, 5.7%)보다 뚜렷하게 개선됐다.
수익성 지표인 영업이익률과 세전순이익률도 모두 상승하거나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야권 "경기 둔화·관세 리스크 속 세율 인상은 역주행"…여당서도 이견 표출
국민의힘을 비롯한 야권은 글로벌 경기 둔화와 트럼프발(發) 관세 위협 등 대외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법인세 인상은 기업 부담을 키우고 투자·고용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내수 회복세가 뚜렷하지 않은 상황에서 증세 카드를 꺼내는 것은 "정책의 시계가 거꾸로 가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송언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여야가 합의해 1%p 인하했던 세율을 정부가 일방적으로 되돌리는 것은 정책 신뢰를 해치는 일"이라며 "경기가 좋지 않고 관세협정으로 기업 피해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세금까지 더 물리면 주가 부양에도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같은 당 김정재 정책위의장도 "발표 직후 코스피가 3.88% 급락한 것이 단적인 사례"라며 "잘못된 세제 개편으로 시장 전체에 부정적 시그널을 줬다"고 강조했다.
그는 "연간 4조3000억원 정도의 세수를 확보하겠다고 하지만, 투자 위축과 자본 유출, 기업 경쟁력 약화로 인한 경제 전반의 피해가 훨씬 클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은 특히 외국인 투자자들이 명목세율 인상 자체를 '기업하기 어려운 환경'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세율 인상이 고스란히 한국 경제의 신인도 하락과 자본시장 이탈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당 내부에서도 온도 차가 감지된다. 다수 의원은 세수 정상화 필요성에 공감하지만, 일부는 경기 상황과 시장 충격을 고려해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신중론을 내놓고 있다.
안도걸 민주당 의원은 "과표가 낮은 구간까지 일괄적으로 세율을 인상하면 대기업뿐 아니라 자금 여력이 크지 않은 중소기업까지 세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소기업이 전체 법인의 94%를 차지하지만 전체 수입금액 비중은 32% 수준에 그친다는 국세청 통계를 인용, 상위 2개 구간(과표 200억원 초과)의 법인세율만 2022년 수준으로 환원하는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정부는 오는 9월 정기국회에 세제개정안을 제출해 심의를 요청하고, 국회는 이를 심의·의결해 연내 세제개편안을 최종 확정한다는 방침이다. 이후 최종 의결된 세제개편안은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된다.
뉴시스
이자형 기자 ljah999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