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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노동자가 원청에 교섭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한 이른바 '노란봉투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대학 청소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앞으로의 임금 협상 과정이 보다 수월해질 것이라는 기대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그간 원청인 학교가 아니라 하청인 용역업체와 교섭해야 했다면, 이제는 학교와 직접 교섭에 나설 수 있게 된 것이다.
27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서울지부) 등에 따르면, 서울권 대학 중 청소노동자를 직고용하고 있는 곳은 서울대, 삼육대, 동국대 등 7곳에 그친다. 그 외 서울권 대학들은 여전히 청소노동자들을 간접고용하고 있다.
간접고용 형태로 근무 중인 청소노동자들은 매년 용역업체와 집단 교섭을 벌이며 수당·처우 등을 협상해왔다. 그러나 교섭 의무가 없는 대학은 협상 테이블에서 제외됐고, 노동자들과 직접 교섭에 임해야 하는 용역업체는 '원청인 학교 측으로부터 결재를 받아야 한다'는 등 적극적으로 협상에 나서지 않는 상황이 반복돼 왔다.
교섭이 지연되거나 결렬되며 대학 내에서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앞서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는 지난 2021년 11월부터 연세대·고려대 등 13개 대학사업장 내 16개 용역업체와 임금인상, 휴게시설 설치 등의 내용을 포함하는 집단 교섭을 시작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하자 각 대학에서 시위를 이어갔다.
연세대 청소·경비노동자들이 시급 440원 인상안과 퇴직자 인원 충원, 샤워실 설치 등을 요구하며 학내 집회를 여는 과정에서는 한 학생이 집회로 인해 수업권을 침해받았다며 노동자들을 형사 고소하고 손해배상소송을 청구하는 등 뜻하지 않은 마찰도 발생했다. 법원은 이후 집회로 수업권이 침해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연세대 청소·경비노동자들은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난해, 시급 인상 등을 요구하며 다시 학내 집회에 나서기도 했다.
이같은 상황에, 간접고용 형태로 근무 중인 대학 청소노동자들은 A대학 청소노동자 서씨처럼 노란봉투법 시행으로 학교와 직접 교섭할 수 있게 된 것에 기대감을 내비치고 있다.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은 사용자 범위를 확대해 하청노동자들이 원청과 직접 교섭할 수 있게 하고 노동쟁의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 등을 골자로 한다.
서울 B대학 청소노동자 이모씨는 "반가운 소식"이라며 "노동자들 이 교섭에 나설 때 자신감과 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실효가 금방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고, 원청도 나름대로의 준비를 하지 않겠냐"면서도 "걱정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걱정은 그때 가서 하겠다. 이제 원청 교섭을 어떻게 할지 준비할 것"이라고 했다.
서울 C대학 청소노동자 김모씨도 "매년 교섭 때 용역도 원청의 눈치를 보는 입장이다. 이에 원청인 학교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며 "우리 대학 조합원들은 긍정적으로 크게 기대를 하고 있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큰 변화를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우려도 따라왔다. 김씨는 "조합원들의 기대와 달리 개인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원청이 직접 대응해도, 하청에 압력을 넣은 것처럼 우리에게 압력을 넣지 않겠냐"고 말했다.
전문가들 역시 원청과 직접 교섭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질 경우 사용자 책임성이 뚜렷해져 '교섭 회피'가 줄고 청소노동자의 교섭력이 높아질 것으로 내다보면서도, 실질적 처우 개선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고 봤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 겸 L-ESG 평가연구원 원장은 "상대적 교섭 지위가 안정화됐으나, 실질적 개선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사회적 책임성에 대한 새로운 태도 정립으로 이어져야 한다"며 "입법 취지에 맞게 원청 책임성에 대한 사회적 반성과 변화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정부는 교섭 절차와 교섭 범위, 방식에 대한 형식적 해석도 필요하지만, 포괄적 업종·산별 교섭을 이루는 방향과 원청의 책임성에 대한 규범 정립의 취지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간접고용 노동자의 처우 개선에는 학교가 직접 교섭에 나서는 것 뿐 아니라, 여러 부분이 종합적으로 고려될 필요가 있다는 제언도 나왔다.
조혁진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 연구위원은 "대학이 수익사업을 하는 기관은 아니기 때문에 간접고용 노동자 처우 개선을 위해 등록금을 늘리는 요구를 할 수 있는데 자칫 잘못하면 이것이 '을'과 '을'의 싸움으로 번질 우려도 있다"며 "학생들의 반발도 있을 수 있고, 오히려 갈등이 유발될 수 있어 이런 부분까지 심사숙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러면서도 이 문제를 단순히 '비용 인상' 측면에서 바라봐서는 안된다고도 지적했다.
조 연구위원은 "청소할 공간, 이용하는 사람에 대한 이해도가 높을수록 이용자의 삶의 질 또한 향상된다. 노란봉투법으로 근속이 늘어나면 환경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단순히 월급 인상을 넘어 대학구성원들의 안정적 교육, 연구 환경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라 그것을 단순히 '돈'으로 환원하기는 어렵다"고 강조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