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타포트 헤드' 크루앙빈, 불완전함이야말로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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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포트 헤드' 크루앙빈, 불완전함이야말로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네

4년 만에 한국 찾는 크루앙빈 서면 인터뷰

[서울=뉴시스] 크루앙빈. (사진 = David Black 제공)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나이스데이] 소음으로 가득한 시대에, 어떤 음악은 비워냄으로써 비로소 가장 거대한 세계를 창조한다. 미국 텍사스의 낡은 헛간에서 태동한 세 고독한 영혼의 그루브가 마침내 한국의 툭 트인 여름밤을 유영한다. 오는 31일 막을 올리는 '2026 인천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의 첫날 헤드라이너로 나서는 3인조 밴드 '크루앙빈(Khruangbin)' 이야기다. 로라 리(베이스), 마크 스피어(기타), 도널드 레이 DJ 존슨 주니어(드럼)로 구성된 이들은 장르와 국경이라는 완고한 잣대를 허물고 기꺼이 '지구의 음악(Earth music)'을 자처해왔다. 태국 펑크(Funk)와 중동의 사이키델릭, 자메이카의 덥 사운드가 이들의 손끝에서 직조될 때, 음악은 번역이 필요 없는 보편의 정서로 승화된다.

이들의 디스코그래피는 채움보다 비움의 미학을 증명하는 고요한 궤적이다. 2015년 첫 앨범 '더 유니버스 스마일스 어폰 유(The Universe Smiles Upon You)'부터 올해 발표한 재녹음작에 이르기까지, 크루앙빈은 악보 위의 쉼표조차 하나의 뚜렷한 음표로 대우한다. 침묵을 훌륭한 악기로 삼고, 통제할 수 없는 종다리의 지저귐마저 음악의 육체로 끌어안는 태도. 그것은 소리를 완벽하게 지배하려는 오만을 버리고, 삶의 불완전함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려는 구도자의 철학과 맞닿아 있다.

디지털 메트로놈이 라이브 무대의 박동을 통제하는 시대에도 이들은 여전히 인이어 모니터 없이 서로의 숨소리에 기대어 연주한다. 오류와 실수가 개입할 틈을 기꺼이 허락하는 이 위태롭고도 아름다운 아날로그적 합(合)은, 결국 우리가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가장 다정하게 상기시킨다. 4년 만에 한국을 찾은 크루앙빈에게, 헛간의 온기와 우주의 미소에 대해 물었다. 다음은 텍사스에서 송도로 날아온 이 '비행기(태국어로 크루앙빈)'가 음반 유통사 리플레이 뮤직을 통해 전해온 일문일답이다.

-4년 만에 한국에 오십니다. 펜타포트 무대의 헤드라이너이기도 하시죠. 텍사스 시골의 작은 헛간에서 만든 소리가 송도의 탁 트인 밤하늘과 만날 예정입니다. 이 완전히 다른 두 공간이 만나면, 라이브 무대에서 어떤 새로운 시너지가 생길까요?

"한국에 다시 돌아올 수 있게 돼 더없이 큰 행운이라 느낍니다. 헛간이라는 공간이 저희의 음악적 접근에 깊은 영감을 주었듯, 인천의 여름 밤하늘 역시 저희가 연주하는 방식에 그에 못지않은 크나큰 울림을 줄 것이라 예감합니다."

-데뷔 앨범 10주년을 맞아, 옛날 그 헛간에서 '더 유니버스 스마일스 어폰 유 II(The Universe Smiles Upon You II)'를 다시 녹음하셨습니다. 10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났는데, 그동안 헛간의 공기와 멤버들의 마음속 풍경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헛간은 10년 전 저희가 녹음했던 그때와 거의 같은 모습으로 남아있습니다. 밴드로서 저희에게 변함없는 상수(constant)와 같은 존재죠. 무척이나 추웠고 그로 인해 녹음 과정에서 독특한 어려움들을 마주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저희는 지난 10년 동안 우리 자신이 변해왔음을 깨달았습니다. 세계를 유랑하며 겪은 삶의 경험들이 지금의 우리를 빚어내었죠. 본래의 음악에 새로운 시선으로 다가가는 것은 참으로 기분 좋은 일이었습니다."

-새로 녹음한 '리틀 조 앤드 메리 II(Little Joe and Mary II)'에서는 특유의 우주적인 소리('스페이스 트왱')를 내기 위해 페달 스틸 대신 신시사이저를 쓰셨죠. 차가운 전자 악기를 쓰면서도 어떻게 따뜻하고 어쿠스틱한 공간감을 지켜낼 수 있으셨나요?

"'차갑다'는 표현이 언급된 게 재미있네요. '리틀 조 앤드 메리 II'는 앨범 수록곡 중 유일하게 거실 벽난로 곁에 모두 모여 앉아 실내에서 녹음한 곡입니다. 공간과 녹음 채널의 한계 때문에 윌 반 혼(Will Van Horn)이 페달 스틸 대신 작은 신시사이저를 연주했고, 저(DJ)는 어쿠스틱 기타 케이스 위를 브러시로 연주했죠. 신스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당신이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차가워질 수도, 따뜻해질 수도 있다는 데 있습니다."

-한 인터뷰에서 '지난 10년 동안 침묵도 좋은 악기라는 걸 배웠다'고 하셨습니다. 요즘은 뭐든 꽉꽉 채워야 하는 시대인데요. 그런데도 음악에 일부러 큰 여백을 남겨두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것이 여러분이 삶을 살아가는 방식과도 관련이 있을까요?

"악보에서 쉼표 또한 하나의 음표입니다. 소리의 부재(不在) 역시 소리인 것이죠. 여백의 힘을 다루는 법을 깨우친다면, 그것은 대단히 강력하고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저희 음악의 여백은 제한된 악기 편성으로 인해 자연스레 태어나는 것이지만, 편곡에 다가설 때 역시 여백을 염두에 두는 편입니다. 그리고 네, 그 개념은 삶의 여러 단면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복잡한 도로의 체증을 완화하려면 차선을 더 늘리거나 특정 시간에 달리는 차량의 수를 줄여야만 합니다. 음악의 섭리도 이와 비슷하게 흘러갑니다."

-2024년 앨범 '아 라 살라(A LA SALA)'는 다른 뮤지션의 참여 없이 온전히 세 분의 연주로만 채우셨습니다. 화려한 장식을 다 떼어내고 원래의 3인조로 돌아가신 것은, 밴드의 초심을 다시 찾기 위한 선택이셨나요?

[서울=뉴시스] 크루앙빈. (사진 = David Black 제공)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아 라 살라'를 녹음하러 들어갔을 땐, 레옹 브릿지스(Leon Bridges) 그리고 뷰 파르카 투레(Vieux Farka Touré)와의 협업 프로젝트를 막 마친 직후였습니다. 그 작업들은 진심으로 즐거웠죠. 하지만 다시 우리끼리만 고립되어 작업하는 방식으로 돌아가는 것이 그 당시엔 가장 자연스러운 흐름처럼 느껴졌습니다. 사실 그 앨범은 오랜 친구인 윌 반 혼이 페달 스틸 연주로 모습을 비추지 않은 첫 번째 앨범이었기에, '더 유니버스 스마일스 어폰 유 II'에서 그가 다시 돌아와 함께한 것은 자연스레 기분 좋은 일이었습니다."

-뷰 파르카 투레와 함께 만든 앨범 '알리(Ali)'를 들어보면, 서로의 색깔을 억지로 섞지 않고 각자의 개성을 그대로 살려두셨습니다. 진정한 협업이란 하나로 합치는 게 아니라,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적당한 거리를 존중할 때 완성되는 것이라 생각하시나요?

"그 세션은 정말 즐거웠습니다. 스튜디오에서 뷰와 시간을 보내는 것은 진정 기쁜 일이었죠. 제 관점에서는, 대조적이면서도 뚜렷한 두 개의 기타 톤이 하나로 모이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같은 소리 영역대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서로의 소리를 짓밟지 않고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은 반드시 풀어야만 하는 편곡의 퍼즐이었습니다.

제 생각에 마크(Mark)가 조력자로서의 역할을 기꺼이 맡아 키보디스트로서의 재능을 눈부시게 발휘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녹음의 키보드와 오르간 파트를 들어보면 대단히 감각적이고 치밀하게 구상되어 있습니다. 또한 '디아라비(Diarabi)'라는 곡에서 마크의 백킹 기타는 트랙 전체의 굳건한 뼈대를 세워줍니다. 그가 실시간으로 마지막 테이크를 녹음하는 걸 지켜보던 때가 스튜디오에서 제가 가장 사랑했던 순간 중 하나입니다."

-크루앙빈의 음악을 '월드 뮤직'이 아니라 '지구의 음악(Earth music)'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장르나 언어의 벽을 없애려는 노력은, 결국 말이 필요 없는 보편적인 감정, 즉 슬픔이나 기쁨의 본질에 닿기 위함인가요?

"저희는 전 세계의 음악을 정말 많이 듣습니다. 가사가 늘 영어가 아님에도, 음악은 왠지 모르게 번역을 거치지 않고도 그 노래의 정서를 고스란히 전달해 냅니다. 한 번은 다른 언어로 된 실연에 관한 노래를 듣고 있었는데, 그 곡의 주제가 무엇인지 몰랐음에도 우리는 그 아픔을 느꼈습니다. 가사를 찾아 번역해 보니 우리가 느낀 것이 그 노래의 정확한 감성이었더군요. 단어 하나 이해하지 못했는데도 말입니다. 저희 밴드가 가진 가장 큰 강점 중 하나는 우리 노래 상당 부분에 가사가 없다는 점이라 믿습니다. 멜로디는 듣는 이의 모국어와 상관없이, 듣고 이해할 수 있는 감정들을 선명히 불러일으킵니다. 마음이 말을 건넬 때, 마음이 귀를 기울이는 법입니다."

-아주 큰 무대에서도 인이어 모니터를 쓰지 않고, 서로의 숨소리가 들릴 만큼 바짝 붙어서 연주하십니다. 모든 것이 디지털로 통제되는 요즘 음악계에서, 이렇게 날 것 그대로의 합을 고집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2025년 가을 저희는 '더 유니버스 스마일스 어폰 유 II' 발매를 기념하며 미국 전역의 작은 클럽들을 도는 투어를 했습니다. 무대와 공간이 훨씬 작았기 때문에 인이어 모니터(IEM)가 필요하지 않았죠. 무대와 공연장이 거대해지기 이전, 우리가 본래 연주하던 방식으로 돌아가는 것은 무척이나 신선한 경험이었습니다. 페스티벌 무대에서는 대형 PA 장비에서 튕겨 나오는 소리를 덜어내는 데 인이어가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럼에도 저희는 메트로놈이나 백킹 트랙에 기대지 않고, 가능한 한 가장 유기적인 방식으로 함께 호흡하며 날것 그대로의 여과 없는 교감을 유지합니다. 인간이기에 실시간으로 실수가 빚어지기도 하는, 가장 위험천만한 방식이죠. 하지만 인간적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일이며, 우리의 불완전함이야말로 궁극적으로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크루앙빈의 가사는 종종 뚜렷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짧은 조각들에 가깝습니다. 명확한 가사를 쓰지 않으시는 것은, 거꾸로 듣는 사람들이 각자의 삶을 음악에 자유롭게 비춰보게 하려는 의도이신가요?

"의도한 것이 맞습니다. 저희는 아주 포괄적인 주제를 다루거나, 반대로 극도로 사적이고 구체적인 사건과 감정을 다루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왠지 모르게 보편적인 울림으로 가닿게 되더군요.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저희에게는 이 방식이 통합니다."

-예전에 '삶은 여행이고 죽음은 목적지이니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결과만 보고 미친 듯이 달려가느라 지친 사람들에게, 크루앙빈의 음악이 삶의 속도를 늦춰주는 역할을 한다고 보시나요?

[서울=뉴시스] 크루앙빈. (사진 = David Black 제공)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저희는 누군가에게 어떻게 느껴야 하는지, 혹은 삶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가르치려 한 적이 결코 없습니다. 한 폭의 그림도 바라보는 이의 시선에 따라 완전히 다른 감정으로 다가갈 수 있습니다. 모든 이는 각자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예술을 경험하는 법이니까요."

-다양한 문화가 섞인 휴스턴이라는 도시는 밴드의 뿌리와도 같습니다. 여러분의 음악에서 '고향'은 다시 돌아가 쉬고 싶은 곳인가요, 아니면 전 세계의 음악을 찾아 떠나는 여행의 출발점인가요?

"휴스턴은 저희에게 영원한 집일 것입니다. 그 도시는 저희의 자아 형성기에 그토록 방대한 문화와 다양성을 안겨줬고, 그것은 지금의 저희를 빚어내는 데 중대한 역할을 했습니다. 크루앙빈을 듣는다는 것은 곧 휴스턴을 듣는 것과 같습니다. 그 도시는 저희의 DNA 속에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헛간에서 녹음하실 때 새 소리나 바람 소리를 지우지 않고 그대로 두셨습니다. 통제할 수 없는 자연의 소리를 음악으로 받아들이신 것은, 불완전한 삶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려는 태도와도 연결이 되나요?

"헛간에서 '어거스트(August) 12 II'를 녹음하는 동안, 들종다리 한 마리가 저희의 노래에 기꺼이 동참해 준 것을 너무나 큰 행운이라 느꼈습니다. 그 곡을 여러 번 테이크(take)해 보았고, 그 테이크가 전체적으로 가장 완벽한 연주였다고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다른 테이크들에는 그 새의 솔로가 담겨있지 않았기에 주저 없이 그 버전을 선택했죠. 앞으로의 녹음에서도 새들이 더 자주 카메오로 찾아와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10년 전 데뷔 앨범에서 우주가 여러분에게 미소를 지어 주었고('The Universe Smiles Upon You'), 이번 재녹음 앨범으로 그 미소를 다시 확인하셨습니다. 앞으로 10년 뒤 과거를 돌아보실 때, 그때의 우주는 여러분에게 어떤 표정을 짓고 있기를 바라시나요?

"바라건대, 한층 더 크고 아득히 번져가는 미소를 머금고 있기를 바랍니다."

-펜타포트의 여름밤, 여러분의 마지막 연주가 송도의 공기 중으로 흩어지고 나면 공연은 끝이 납니다. 소리가 완전히 사라진 뒤, 한국 관객들의 마음속에 어떤 감정의 여운이 남기를 기대하시나요?

"우리가 한국의 아름다운 분들을 위해 연주하며 가슴 벅차게 느끼는 그 기쁨과 충만함을, 관객 여러분 또한 똑같이 품고 돌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