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철벽' 깨지나…객관식→논·서술형 수능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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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철벽' 깨지나…객관식→논·서술형 수능 논의

30년 전 "학생들 적성 계발·창의성 신장" 구호
본고사→수능…5지선다 객관식 대입 못 벗어나
논·서술형 도입, 교육계 공감대…여론은 부정적
학벌주의 완고, 대입 공정성 민감해 난관 꼽혀

[나이스데이] 지난 30년 동안 대한민국의 입시 경쟁은 개선되지 않았다는 사회적 여론이 큰 것으로 풀이된다. 사회적 부담과 고등학교 공교육의 파행 등 부작용은 여전하지만 대안에 대한 논란도 만만찮다.

26일 교육계에 따르면 5.31 교육개혁 30주년인 지금도 대학입시제도의 틀을 개편하기 위한 논의는 현재진행형이다.

교육부는 지난 2023년 12월 '2028학년도 대학입시제도 개편'을 확정했지만, 사회 변화에 걸맞은 인재 양성을 뒷받침할 대입제도 개편은 미완의 과제라는 입장이었다.

1993년 첫 시행 후 30년 넘게 5지선다형 객관식을 골자로 하는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고등학교 중간·기말고사 지필시험(내신)의 틀은 완고하게 유지되고 있다.

합의제 행정기구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는 새 대입 제도를 포함한 국가교육발전계획을 마련하고 있다. 국교위는 보수와 진보 등 정권의 변화에 따라 교육 정책이 요동치며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는 점을 막고, 중장기 교육정책의 방향을 합의로 정하자는 취지에서 출범한 기구다.

경쟁을 유발하는 내신 상대평가의 폐지, 사고력 평가를 위한 수능 논·서술형 문항 도입, 학생의 적성과 진로를 존중하기 위한 수능 자격고사화 또는 이원화가 거론된다.

이는 민주화 이후 교육계에서 풀고자 했던 오랜 숙제다.

입시지옥은 30년 전 5.31 교육개혁의 가장 큰 문제의식이었다. 대통령 자문 교육개혁위원회(교개위)의 1차 보고서는 "한국처럼 교육열이 높은 나라가 없으며 한국 학생들처럼 공부에 시달리는 나라가 없지만 일터에서는 불량품 인력으로 판정 받는 것이 교육의 실상"이라고 했다.

세계화, 정보화 시대에 "학생들의 다양한 능력과 적성을 계발하고 창의성을 신장시키는 교육"이 시급한데, '한 가지 정답만을 요구하는 객관식 시험'과 '획일적, 일방적 강의 위주 수업'은 이를 질식시키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이런 문제의식은 30년 간 역대 교육 당국의 숙원이 됐다.

5.31 교육개혁으로 국공립대 국·영·수 암기식 본고사가 폐지됐으며 수능과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가 확대, 도입됐다. 이후에도 객관식 시험의 대명사가 된 수능의 힘을 빼고 학생의 특기·적성을 강화하는 시도가 이어졌다.
참여정부 때 2008학년도에 한해 등급제 수능(표준점수, 백분위 폐지)이 실시됐으나 이듬해 바로 환원됐고, 문재인 정부는 고교학점제 도입과 수시 학생부종합전형 확대를 추진했으나 조국 사태로 다시 정시(수능)가 확대됐다.

한국 사회 특유의 입시열과 학벌주의, 대학 서열화에 대한 인식 역시 완고하게 유지돼 왔다.

교육계에서 매년 주목 받는 한국교육개발원(KEDI) 교육여론조사(2024)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국책연구기관인 KEDI가 매년 교육 현안 문제에 대해 실시하는 조사다.

지난해 상반기 만 19~75세 전국 성인남녀 4000명(주민등록인구 대비 1.55%)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학벌주의에 대한 전망'에 있어서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답변이 48.3%로 응답자 절반에 육박했다. '심화될 것'이 34.2%, '약화될 것'이 11.1%로 각각 뒤이었다.

'대학 서열화에 대한 전망'에서는 '큰 변화가 없을 것' 50.2%, '심화될 것' 33.3%, '약화될 것' 11.3%였다.

KEDI는 "지난 10년 간 조사에서도 이런 인식이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면서 "한국에서 학벌주의는 여전히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으며, 교육을 통한 사회적 계층 상승을 가능하게 한다는 믿음과 연결돼 있는 듯하다"고 적었다.

사교육에 대한 부담감도 여전했다. KEDI 조사에서 고등학생 사교육비 지출 부담에 대해 5점 척도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 평균은 4.09점으로 '지출부담이 크다(4점)'였다. 5점인 '지출부담이 매우 크다'를 52.1%가 택했다.

이런 탓에 그간 교육계에서는 그간 경쟁 완화에 적극적인 진보 진영은 물론이고 5.31 교육개혁을 계승하는 보수 진영에서도 대입 개편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왔었다.

지난 23일 유은혜 전 부총리, 조희연 전 서울시교육감 등 문재인 정부 교육계 수장들이 합류해 출범한 '비상시국 교육원탁회의'에서도 "근본적인 대입 개편"을 촉구했다.

윤석열 정부의 두 교육 수장인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이배용 국교위 위원장도 여러 언론 인터뷰에서 논·서술형 대입 개편에 긍정적인 입장을 내비쳐 왔다.
폭넓은 공감대에도 그간 대입 개편이 성공하지 못한 원인은 역설적으로 '대입 공정성'을 숭상하는 여론에 있었다.

이번 KEDI 교육여론조사에서도 '공정한 대입제도 운영'(27.5%)는 '고등교육정책 중 향후 지속적으로 강조돼야 할 정책' 1위였다. 지난 2019년 '조국 사태'는 대입 공정성이 국민들의 노여움을 사는 요소라는 방증이었다.

대입 전형에서 가장 많이 반영돼야 할 항목은 이번 2024년도 조사에서 특기·적성(28.2%), 인성 및 봉사활동(25.1%) 다음이 수능(24.6%)이었지만, 지난 2018~2022년 5개년 동안 조사에서는 수능이 계속 1위였다.

국교위가 지난 20일 공개한 중장기 국가교육발전계획 관련 국민참여위원회 토론회 후 설문조사 결과도 엇갈렸다.

교육 관계자, 학부모, 학생·청년, 일반 국민 위원 133명을 대상으로 토론회를 가진 후 수능 논·서술형 문항 도입 필요성을 묻자 찬성이 60%고 반대가 40%였다. 다만 학생·청년(65%), 일반 국민(58%)은 반대가 더 많았다.

단순 문제 풀이식 과열 경쟁에서 벗어나 학생의 고차원적 사고력 함양을 도울 수 있다는 찬성 입장과 달리, 반대 측은 현실 속에서 논·서술형 대비가 어려워서 사교육이 급증할 수 있고 공정한 평가를 할 수 있을지 우려감이 컸다.

교육 당국이 다음 대입제도 개편안을 내놓을 때 획기적인 변화가 이뤄질 수 있을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새로운 대입 제도를 내놓을 국교위는 당초 이달까지 시안을 마련하고 3월 말 국가교육발전계획을 확정할 방침이었다. 그러나 국교위 내부 갈등,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소추에 따른 조기 대선 가능성에 정확한 발표 시기는 미지수에 놓였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