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수출감소·고환율…설 이후 '퍼펙트 스톰' 몰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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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수출감소·고환율…설 이후 '퍼펙트 스톰' 몰아친다

올해 성장 1%대 그칠 듯…3년째 잠재성장률 하회
소비심리 위축 지속…계엄사태 이후 고용 쇼크까지
정치 불안에 환율도 급등…물가 상승 자극할 우려도
수출도 불안…4월부터 미국 통상 압박 본격화될 듯

[나이스데이] 새해를 맞는 경제 주체들의 표정이 어둡다. 소비·투자 심리 위축으로 내수 경기는 꽁꽁 얼어붙은 가운데 우리 경제의 마지막 버티목인 수출도 새해 들어 증가세가 꺾인 모습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은 2% 정도로 평가되는데, 올해는 이에 미치지 못하는 1%대 성장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12·3 비상계엄 사태와 미국의 신 행정부 출범 등 대내외 불안 요인이 겹치면서 금융과 실물 경제가 모두 흔들리는 모습이다. 원·달러 환율은 1500원대 언저리까지 상승하면서 자금 유출에 대한 우려는 더욱 커졌다.

지난해 하반기 안정 국면에 접어든 듯 했던 물가마저 환율 상승으로 다시 들썩이고 있다. 설 연휴 이후 우리 경제가 '퍼펙트 스톰(복합위기)'에 직면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점점 커지는 이유다.

27일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지난해 성장률은 2.0%에 그쳤다. 2023년(1.4%)에 이어 2년 연속 저성장 추세다. 분기별 성장세를 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전 분기 대비 성장률은 지난해 1분기 1.3%를 기록한 뒤 2분기 -0.2%, 3분기 0.1%, 4분기 0.1%로 3분기째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지난해 12월 발생한 계엄 사태의 쇼크와 1월 미국 신 행정부 출범의 영향으로 올해 전망은 더욱 암울하다. 정부는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1.8%, 한은은 1.6~1.7%까지 낮췄다. 우리 경제의 성장세가 3년 연속으로 2%를 밑돌면서 침체 국면에 들어왔음을 사실상 인정한 셈이다.

◆얼어붙은 소비·고용…환율·물가 불안에 경제 심리 더 위축

불안한 경제 상황에 소비 심리는 빠르게 식고 있다. 지난해 12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12.5포인트(p) 하락한 88.2를 기록했다. 금융위기 때인 2008년 10월 이후 가장 큰 하락폭이다. 올해 1월에는 지수가 91.2로 3p상승했지만 여전히 100보다 크게 낮아 비관적인 정서가 훨씬 강하다. 소매판매액지수는 2022년 -0.3%, 2023년 -1.5%에 이어 3년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할 가능성이 커졌다.

여기에 건설 경기 부진은 지난해 성장을 가장 크게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전분기 대비 건설투자 증가율이 지난해 3분기 -3.6%, 4분기 -3.2%에 그쳤다. 건설투자는 지난해 3분기와 4분기 성장률을 각각 0.5%p씩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고용 시장에도 한파가 몰아쳤다. 지난해 12월 취업자 수는 전년 동월 대비 5만2000명 감소해 3년 10개월 만에 마이너스로 전환했다. 특히 제조업과 건설업에서 취업자수 감소세가 6개월 이상 이어지고 있다. 실업률은 전년 동월보다 0.5%p, 전월보다 1.6%p나 높은 3.8%로 치솟았다.

설 연휴 이후에도 우리 경제는 불안한 모습을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 정치 불안이 가장 큰 리스크다. 재계는 보통 정부의 정책 기조에 맞춰 한 해의 고용과 투자 규모를 결정하는 경향이 있는데 올해는 탄핵 심판과 내란죄 수사 등으로 국내외 정치 상황이 안갯속이다. 게다가 '반도체 특별법' 등 기업 투자를 유발할 수 있는 정책들도 여야 대치 상황에 가로막혀 있다.

또 예년보다 이른 설 연휴로 인해 올해 1월에도 생산·소비 등 각종 지표가 부진하게 나올 것으로 예상돼 경제 심리가 더욱 위축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

국내외 정치 불안에 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오름세를 나타내던 원·달러 환율은 12·3 계엄사태 이후 급격히 상승해 지난해 12월 중 1480원대를 찍었다. 최근 당국의 외환시장 관리로 1430원대까지 내려왔지만 여전히 원화 가치 하락에 따른 자금 유출에 대한 우려가 큰 상황이다.

환율 급등이 물가 불안을 자극할 여지도 있다.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해 9월 1.6%, 10월 1.3%, 11월 1.5%로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다가 12월 1.9%로 상승했다. 여전히 한은의 물가관리목표치인 2%를 밑돌고 있지만 환율 상승으로 인해 물가가 상승 곡선을 그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지난해 12월에는 휘발유(2.9%), 자동차용 LPG(8.9%), 취사용 LPG(4.3%) 등 에너지 가격이 오름세로 전환했고, 무(98.4%), 배추(26.4%) 등 신선식품 가격도 급등세를 나타냈다. 지금처럼 경기가 침체 국면에 접어든 상황에서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지면 경제 심리가 더욱 위축되는 악순환에 빠질 수도 있다.

◆수출마저 '흔들'…트럼프 행정부 통상 압박도 곧 시작될 듯

이런 상황에서 우리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던 수출도 올해는 전망이 낙관적이지 않다. 지난 2023년 10월부터 15개월 연속 플러스 행진을 하던 수출은 1월 들어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지난 20일까지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5.1% 감소한 316억 달러를 기록했다. 반도체를 제외한 승용차·석유제품·자동차 부품 등 대부분 품목에서 수출이 감소했다. 중국·미국·유럽연합(EU) 등으로의 수출이 줄었다.

정부는 올해 수출이 역대 최대치인 7000억 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지만 상황을 낙관하긴 어렵다. 가장 큰 불안요소는 미국 신 행정부 출범이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보편관세로 무역 장벽을 높이고 자국산업 보호에 나설 전망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후 지금까지 내놓은 통상 조치가 우려처럼 파격적이지는 않았다는 건 다행스런 부분이다. 지금까지 멕시코·캐나다에만 25%의 관세 부과를 예고했을 뿐 이후 뚜렷한 조치를 내놓진 않았다.

하지만 미국의 정책 기조가 급변하면서 국제 질서와 금융 시장에 소용돌이가 칠 것이라는 우려는 여전하다. 우리가 기대하는 것처럼 미국의 정책 기조 변화가 '순한맛'이 되긴 어렵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세계 질서와 동맹 체제의 안정적인 관리보다는 그린란드, 캐나다 등 북미 주변으로 영토 확장을 노리는 여러 발언을 내놨다. 미국 건국 초기 '고립팽창주의'로의 회귀인 셈이다.

미국이 제조업 보호를 위해 보편 관세 부과에 그치지 않고 무역 상대국들의 통화를 평가 절상하는 '제2의 플라자 합의'를 요구할 것이라는 전망도 곳곳에서 나온다. 미국이 지금까지 체결한 무역협정을 전면 재검토하고 나설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신 행정부 출범 이후 서명한 '미국 우선 무역정책' 각서는 관계 부처가 ▲타국의 불공정 무역 행위 ▲무역 협정의 유효성 ▲주요 교역국의 환율 정책 관행 등에 대해 조사하고 4월 1일까지 보고토록 했다. 주요 무역 상대국에 대한 통상 압박은 이 때부터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는 이런 미국의 통상 정책 기조 변화에 가장 취약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김광석 한양대 겸임교수(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과 관련해 "세계 경제 질서의 재편"이라며 "앞으로 4년 동안 경제 질서와 외교·안보 질서 모두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 교수는 "바이든 행정부는 동맹국 간의 밸류체인 라인업을 강화하는 방향을 모색했다면, 트럼프 행정부는 글로벌 밸류체인 자체를 원하지 않고 모두 자국 내에서 하려고 할 것"이라며 "우리 주력 산업에 대한 타격은 너무나도 자명하다"고 전망했다.

그는 "미국이 이렇게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 때 흔들리지 않을 수 없다. 그 과정에서 중국의 보복이 있을 수도 있다"며 "주력 산업의 기술 격차를 더 벌리고 우리의 협업 구조나 수출 구조도 적극적으로 재편해 나가야 하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