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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파기환송심을 심리하는 서울고법 형사7부(부장판사 이재권)는 이날 첫 공판기일을 다음달 18일 오전 10시로 연기했다.
법원 사건 전산망만 고려하면 이 후보 변호인단이 이날 오전 공판기일 변경 신청서를 제출한 지 30여분만에 전격적으로 기일을 미룬 것이다. 당초 재판부는 오는 15일 오후 2시 파기환송심 첫 공판기일을 진행할 방침이었다.
서울고법이 이날 오전 이 후보 측이 공판기일 변경신청을 내자 이를 재판부가 전격 수용한 모양새다. 서울고법은 이날 공판 기일 연기 이유와 관련해 "대통령 후보인 피고인에게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해 재판 기일을 대선 이후로 변경했다"고 설명했다. 재판 공정성과 선거운동의 균등한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라는 명분을 앞세운 것이다.
또 다른 배경에는 더 이상 정치적 논란에 휩싸이지 않겠다는 의도도 엿보인다. 서울고법이 일반적인 경우처럼 신청서를 받아 기일 직전까지 검토하다가 기일을 미루는 모양새를 취할 수도 있었다는 점, 기일을 미루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재판부의 결정 배경에는 대법원의 선거 개입 논란이 부담으로 작용한 듯하다.
파기환송심은 대법원 상고심 판결에 기속되는 만큼 이 후보에게 불리한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이 후보가 대법원에 재상고를 제기한다면 형사소송법상 상고 제기까지 7일, 상고이유서 제출까지 20일을 각각 벌 수 있다.
하지만 파기환송 이후 판사들은 물론 시민단체, 민주당이 대법원의 대선 개입을 비판하며 서울고법에 이 후보의 재판 일정을 미루라며 압박 수위를 높이던 점도 재판부의 결단에 적잖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법원 내부에서는 최근 대법원의 초고속 재판에 대한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이날에는 대법관들을 비판하고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퇴, 전국법관회의 소집 등을 촉구하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민주당도 연휴 동안 공식 선거운동 시작(12일) 전을 '데드라인'으로 거론하면서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공판기일을 미루지 않는다면 탄핵·청문회·특검·입법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전방위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압박해 왔다.
그러나 법원은 이를 의식한 듯 이례적으로 법원 안팎의 압박에 떠밀린 것은 아니라는 취지의 입장을 내놨다.
서울고법은 "재판부는 법원 내·외부의 어떠한 영향이나 간섭을 받지 아니하고 오로지 헌법과 법률에 따라 독립하여 공정하게 재판한다는 자세를 견지해 왔고 앞으로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앞서 민주당은 대법원의 상고심 판결에 유권자의 선택을 뺏는 '사법쿠데타'라고 규정하며 공세를 폈다.
향후 서울고법이 재판을 이어갈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만약 이 후보가 대선에 당선될 경우 대통령 불소추특권과 관련한 헌법 84조의 해석이 논란이 될 수 있다.
민주당은 이날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1소위원회에서 '피고인이 대선에 당선됐을 때 법원은 당선된 날부터 임기 종료시까지 결정으로 공판 절차를 정지해야 한다'는 조항을 담은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또 이날 오후 행정안전위원회에서 허위사실 공표죄의 구성요건에서 '행위'라는 용어를 빼는 공직선거법 개정안도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형사소송법은 범죄 후의 법령개폐로 형이 폐지됐을 때 '면소(免訴)', 즉 판단을 하지 않고 소송을 종결하는 판결을 하도록 정하고 있다.
이들 법 개정안이 이 후보의 대통령 당선과 맞물리면 이날 서울고법의 기일 연기 결정이 사실상 면죄부를 주는 꼴이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판사 출신인 문유진 법무법인 판심 변호사는 "(파기환송심을) 선거 후에 판단하겠다는 것은 선거 결과에 따라 법 위반 여부가 달라질 수도 있다는 인상을 준다"며 "대통령 당선 후 재판이 정지되는지, 당선 후 당선무효형 선고 시 효력 등에 관한 혼란이 가중될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의택 법무법인 성지 파트너스 대표변호사는 "대법원이 후보 등록 전에 해결을 하라는 취지로 이례적으로 빨리 파기환송 판결을 한 것인데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그 취지에 맞지 않게 기일을 변경한 것"이라며 "대통령에 당선되면 재판이 정지되는 상황이 될 수 있어 면죄부를 줬다고 봐도 무방한 상황인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고법의 이 후보 파기환송심 연기는 다른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기일 변경은 각 재판부가 별도로 독립적인 결정을 내리지만 서울고법이 재판을 연기했다는 점에서 다른 재판부 역시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게 중론이다.
이날 이 후보 변호인들은 공직선거법 위반 파기환송심 뿐만 아니라 '대장동 배임 및 성남FC 뇌물 의혹' 1심과 '검사 사칭 위증교사' 2심 재판부에도 공판기일 연기를 신청했다. '대장동 배임' 사건은 오는 13일과 27일, '위증교사' 사건은 오는 20일 공판이 잡혀 있다.
이 후보는 수원지법에서도 '경기도 법인카드 유용' 사건과 '불법 대북송금 혐의' 재판을 받고 있는데, 두 재판은 오는 27일 공판준비기일이 잡혀 있다. 다만 공판준비기일은 피고인인 이 후보가 출석해야 할 의무는 없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