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실용' 트럼프의 '거래'…그리고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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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이재명의 '실용' 트럼프의 '거래'…그리고 중국

이재명에 경고 해석…美 극우 입김 반영된 듯
美 통일된 메시지는 아냐…루비오는 언급 안해
백악관 내 극우세력 확인…한미외교 영향줄 듯

[나이스데이] 계엄 사태로 촉발된 6개월여간 정치적 혼란이 이재명 정부 출범으로 마무리되면서, 지난 1월 출범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와의 정상 외교도 비로소 시작될 예정이다.

그런데 미 백악관이 이재명 대통령 취임과 관련한 입장문에 돌연 중국 문제를 거론해 새로운 한미관계에 시작부터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백악관은 지난 3일(현지 시간) 이재명 대통령 대선 승리와 관련한 뉴시스 질의에 백악관 관계자 명의로 "한미 동맹은 철통같이 남아있다"면서 "한국이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치렀지만, 미국은 중국이 전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에 간섭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에 우려하고 반대한다"고 밝혔다.

한국 대선이 자유롭고 공정하게 치러졌다고 평가했지만, 사실상 방점은 중국의 간섭과 영향력에 찍혀있다. 주요 동맹국 대선에 굳이 다른 나라를 언급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백악관이 축하인사도 없이 이러한 입장을 내놓은 의도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으나, 한국의 새 정부와 이 대통령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전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친중 성향 후보라는 공격을 꾸준히 받아왔다. 실용주의 외교를 표방하고, 지난달 대선 토론에서는 한미관계가 외교정책의 근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미 일각, 특히 극우 진영에선 의혹의 눈길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 미 극우세력 유명 인사들은 이 대통령 당선 전후 한국 새 정부와 중국을 연결짓는 주장을 잇따라 내놓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책사로 불렸고, 현재는 강성 지지층 마가(MAGA) 세력 여론 형성을 주도하고 있는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 전략가는 전날 소셜미디어(SNS) 엑스에 "한국은 망했다"고 적었다. 이날 트루스소셜에서는 "중국 공산당의 지원을 받는 새로운 한국 지도부는 미국에 두가지 엿을 줬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트럼프 1기 백악관에 몸담았던 마이클 플린 전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1일 미국이 직면한 도전 중 하나라며 "한국은 며칠 내 선거가 치러지는데, 공산당이 이길 가능성이 존재하고 이는 중국 공산당의 승리를 보장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극우 성향 인플루언서 로라 루머도 전날 한국 대선 결과에 "한국은 고이 잠드소서"라며 "공산주의자들이 한국을 점령해 오늘 대선을 승리했다. 끔찍하다"고 반응했다.

미 극우세력 사이에선 한국 대선에 중국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검증되지 않은 주장이 꾸준히 제기됐는데, 이러한 기조가 트럼프 백악관 입장문에도 반영됐을 가능성이 있다.

한 전직 외교관은 백악관의 반응을 두고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성급히 결론내리기 전에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고위 당국자들이 공개적으로 어떤 구체적인 발언을 하는지 지켜봐야한다"면서도 "MAGA 인플루언서 루머가 올린 게시글이 그 이상한 백악관 입장문을 설명해줄 수도 있다"고 했다.

그간 이 대통령 비판세력은 대선 과정에서 각계 각층 미국 인사들에게 이 대표가 중국 친화적이란 주장을 전달해왔는데,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은 셈이다. 일례로 지난 1월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을 찾은 국민의힘 의원들도 미 의회 관계자들을 만나 이 대통령의 성향에 대해 얘기를 나눈 것으로 알려져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전날 백악관의 입장이 트럼프 행정부의 통일된 메시지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외교가에 따르면 미국은 당초 국무부 선에서 한국 대선 관련 논평을 내기로 우리 정부와도 협의했다. 백악관의 중국 언급은 행정부 내에서 사전에 협의된 반응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백악관에 이어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성명은 이 대통령 당선에 대한 축하인사와 협력 강화에 대한 기대감이 담겼다. 중국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되지 않았다.

백악관의 입장문이 트럼프 대통령이나 백악관 대변인이 아닌, 익명의 관계자발로 나온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까지 겸직하고 있는 루비오 장관의 발언이 트럼프 행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에 더 가깝다고 해석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사안을 경시하거나 우려를 떨치기는 힘들어 보인다.

비록 백악관의 이번 메시지가 조율된 것은 아닐지라도, 백악관 공식 언론창구를 통해 배포된 것은 사실이다. 이재명 정부와 중국간 연결고리를 의심하는 세력이 트럼프 행정부 백악관 내에 자리를 잡고 있다는 의미다.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과 새 정부에 대한 인식을 형성하는데 충분히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외곽에서 관련 메지시를 발산하고 있는 루머, 배넌 같은 극우 인사들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접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인사들로 평가된다.

이는 관세협상과 주한미군 감축, 방위비 조정 등 가뜩이나 현안이 산적한 한미 정상간 외교에 더욱 큰 부담을 지울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백악관을 찾은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앞에서 전혀 검증되지 않은 백인 농장주 집단학살 의혹 영상을 상영하고, 관련 기사를 건네 충격을 안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간 외교에서 주변 평가만큼이나 개인간 관계를 중시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 대통령 입장에서는 트럼프 대통령과 관계 설정부터가 기회이자 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앤드루 여 브루킹스연구소 한국 석좌는 전날 논평에서 "보수층과 일부 중도층에선 이 대통령을 실용주의자보다 기회주의자로 보는 시각이 있으며, (한국의) 민주당 내 강경파가 미국과 거리를 두도록 압박할 수 있다"면서도 "미국 적성국(중국)과 관계를 개선하면서 동맹을 유지하는 건 어려운 균형 잡기가 되겠지만, 이 대통령의 실용주의와 트럼프의 '거래주의' 사이에서 동맹 협력의 새로운 기회가 등장할 수 있다"고 봤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