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총기 살해 '패륜' 父…“비속살해죄 없어 존속살해죄도 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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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총기 살해 '패륜' 父…“비속살해죄 없어 존속살해죄도 폐지”

부모 죽이면 가중처벌, 세계적 유례없는 독특한 법
'젊은 자식이 늙은 부모 죽이면 패륜' 인식이 바탕
'비속살해' 신설보다 '존속살해' 폐지로 균형 맞춰야

[나이스데이] 인천 송도에서 아버지가 아들을 총으로 쏴 살해한 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현재 형법에는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면 '패륜 범죄'로 가중처벌하는 존속살해죄가 있지만 부모가 자식을 살해할 경우 가중 처벌하는 비속살해죄가 없다. 부모가 자식을 살해하는 것을 패륜으로 보지 않는 과거 윤리인식 때문이다. 이에 따라 존속살해죄가 형평성에 어긋나는 구시대적 법인 만큼 폐지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나온다.

22일 경찰에 따르면, 지난 20일 오후 10시30분께 인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 한 아파트에서 아버지 A(63)씨가 아들 30대 B씨를 살해했다. A씨는 파이프 형태로 된 사제총기에 쇠구슬을 넣어 B씨를 향해 발사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범행 약 3시간 만에 A씨를 살인 및 총포화약관리법 위반 혐의로 체포했다.

경찰은 가해자가 아들이었다면 존속살해죄를 적용했겠지만, 부모가 자식을 살해한 경우 적용할 수 있는 비속살해죄는 없어 일반살인죄만 적용했다.

현행범상 살인죄는 크게 ▲형법상 일반살인죄(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 ▲형법상 존속살해죄(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 ▲아동학대범죄처벌특례법상 아동학대살해죄(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 등 3개로 나뉜다.

본인이나 배우자의 직계존속을 살해한 존속살해죄의 최저형량이 일반살인죄보다 높아 가중처벌 한다. 부모가 18세 미만 자녀를 학대하다 살해한 경우에는 아동학대살해죄로 가중처벌 한다. 그러나 부모가 자식을 죽이는 '비속살해죄'는 따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23년 살인사건 801건 중 존속(부모·조부모 등)을 살해한 사건은 60건(7.5%), 아동학대살해는 5건(0.6%). 비속 살해 통계는 집계하지 않고 있다.

대부분 국가는 존속살해나 비속살해를 별도로 규정하지 않는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존속살해죄가 있는 일부 국가는 비속살해도 가중처벌하고 있다. 존속살해만 가중처벌하는 건 효(孝)를 중시하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법 체계인 셈이다.

김재윤 건국대 로스쿨 교수는 "효와 가족 공동체를 강조해서 생긴 조항인데 지금 세상에서 통용될 수 있을까 싶다. 독일, 미국, 중국, 러시아에도 없고 일본은 이미 위헌으로 폐지한 법"이라며 "유교적 효 개념을 근거로 존속살해만 별도로 규정한 현행 형법은 시대착오적"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송도 총격 사건의 경우 성인 부모가 성인 자식을 살해해 적용할 수 있는 별도 조항이 없어 법적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김 교수는 "아버지가 성인 아들에게 지속적으로 가정 폭력을 벌이면서 잔혹하게 살해했어도 처벌할 수 있는 게 일반살인죄밖에 없다"며 "법에 구멍이 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비속살해죄를 신설하기보다 존속살해죄를 폐지해 처벌 형평성을 맞춰야 한다고 제언한다. 존속 살해의 경우 재판 단계에서 구체적인 범행 내용을 고려해 양형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형사법 전문가인 송득범 변호사는 "비속살해죄라는 별도 조항이 없지만 범행의 구체적 사안에 따라 양형 단계에서 가중이 가능하므로 굳이 별도 규정할 필요성은 낮다"고 봤다.

다만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3년 '존속살해죄만 가정처벌하는 것은 평등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헌법소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헌재는 존속살해에 대한 가중처벌은 유교적 효 사상을 반영한 전통적 입법이며, 이를 더 무겁게 처벌하는 것은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며 7대 2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 결정으로부터 12년이 흐른 만큼, 사회 변화에 발 맞춰 존속살해죄 폐지를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이제 시대가 변했고 사회가 달라졌다"며 "(존속살해죄 폐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