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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를 풍미한 전설적인 브릿팝 밴드 '오아시스(Oasis)'가 21일 경기 고양 고양종합운동장에서 16년 만에 펼친 내한공연이 그런 경우다.
애증을 넘어선 말 그대로 원수 같았던 영국 맨체스터 출신 노엘, 리암 갤러거 형제의 불화로 2009년 해체됐다, 올해부터 다시 투어를 돌고 있는 이 팀의 서사는 웬만한 인위적 세계관보다 은유, 직유가 풍성하다.
서로를 시기하고 질투하며 부러워한 이들이 어떻게 다시 손을 잡았는지 그 속내는 알 수 없지만 '헬로'로 시작하는 이번 투어는, 이들의 변증법적인 관계가 이날 고양종합운동장에 모인 5만5000명을 비롯 전 세계 브릿팝 팬들에게 어떻게 안부를 전하고 있는지 목도하게 해준 자리였다.
이들의 반(反)우애, 반(反)억압, 반(反)체제가 빚어낸 우연성의 냉소, 반면에 자신들의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에 대한 필연적인 따뜻한 시선 등의 조합이 오아시스를 살아있는 전설의 반열에 올렸다.
오아시스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상반된 성격을 가진 노엘과 리엄의 관계였다. 리엄은 노엘의 작곡 능력을, 노엘은 리엄의 무대 위 리더십과 신체 조건을 서로 부러워했다. 이런 질투심이 다른 밴드들과 다른 긴장감을 형성해냈고 그것이 팀의 추동력이 됐다.
특히 16년이 지나 다시 뭉친 이들은 반대되는 요인의 완벽한 길항작용(拮抗作用)을 통해 팀의 항상성이 안정 궤도에 진입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역시 아는 맛이 무서운 법. 오아시스는 해체 직전의 후기 곡들 대신 90년대 전성기 시절의 곡들로 세트리스트를 채웠다.
그런데 이번 공연의 63.4%를 차지한 10~20대들(놀(Nol) 티켓 예매 기준)은 이 서사를 뒤늦게 따라가는 중이다. 이날 떼창한 '슈퍼소닉(Supersonic)' '리틀 바이 리틀(Little by Little)' '왓에버(Whatever)' '리브 포에버(Live Forever)'는 이들이 플레이리스트에서 바스러질 듯 꺼내들으면서 외웠을 노래들이다.
그럼에도 뒷짐 진 채 그윽하게 노래하는 리암과 무심한 듯 기타에 온기를 담은 노엘은 영피프티가 아닌, 고전적인 아저씨의 멋이 무엇인지 보여주며 타국의 청춘들과도 연대했다. 멜로디가 귀에 감기는 로큰롤만큼, 합창하며 시너지를 내기에 좋은 문화적 운동도 없다. 특히 오아시스의 곡은 난해한 음악성이 아닌 직관적 감수성으로 시대를 막론하고 청춘을 들뜨게 한다.
그럼 브릿팝은 무엇인가. 1990년대 이후 영국의 기타 중심 대중음악? 권범준 음악 평론가가 브릿팝의 정의와 시대적 배경을 담아낸 '브릿팝(BRITPOP)'(2020·안나푸르나)에 따르면, 브릿팝은 "1980년대의 문화적, 사회적 유산에 대한 반응"이다.
브릿팝은 1980년대 '철의 여인'으로 불린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로 대변되는 보수에 대한 저항이었고 음악뿐 아니라 영화, 패션 그리고 언론까지 아우르는 문화 운동이었다는 것이다. 당시 전 세계 문화는 미국의 그런지가 우위를 점하고 있었는데 오아시스로 대변되는 브릿팝은 이 흐름과 차별화되며 독점적인 지위를 확보한다.
그 특별한 에너지가 넘치던 시대의 음악과 스타일, 태도가 돌고 돌아 지금의 세대에게 새롭고도 낯선 세계로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공연 내내 낯선 이들과 어깨동무 등의 연대를 통해 이 문화를 더 풍성하게 나눴다.
이날 공연 전 고양종합운동장으로 향하는 3호선과 GTX엔 오아시스와 협업한 아디다스 집업을 입은 젊은 세대로 가득했다. 그건 단순히 유명 브랜드 옷이 아닌, 오아시스가 상징하는 청춘의 유니폼처럼 보였다. 오아시스 콘서트가 최근 몇 년 동안 경험한 내한공연 중 최고라고 환호작약한 20대 초반의 대학생 박지영 씨는 "힘겹게 오아시스 공연을 예매하고 지난 7월 투어에서 세트리스트가 공개된 이후 달달 외웠는데, 어느 새 제 인생 노래가 됐다"고 확신했다.
리암은 노래를 쉬지 않고 따라 부르는 객석을 향해 거듭 "뷰티풀"을 외쳤다. 녹슬지 않은 기타 실력을 내내 자랑한 노엘은 프런트맨 동생이 잠시 쉬는 동안 '토크 투나이트(Talk Tonight)' '하프 더 월드 웨이(Half the World Away)' '리틀 바이 리틀'을 앞장서 부르며, 리암의 날카로우면서 섬세한 감성과 다른 고즈넉한 감정을 들려줬다. 그의 이마 주름은 관조적인 낭만의 악보처럼 읽혔다.
'더 마스터플랜(The Masterplan)' '돈트 룩 백 인 앵거(Don't Look Back in Anger)' '원더월(Wonderwall)' '샴페인 슈퍼노바(Champagne Supernova)' 등 앙코르에서 관객들의 목소리는 더 커졌다. '샴페인 슈퍼노바'로 공연의 마침표가 찍힌 후 밤하늘은 화려한 불꽃이 느낌표가 수없이 그려졌다. 공연 내내 탬버린으로 박자를 맞추던 리암은 불꽃놀이 대목에서 홀로 탬버린을 머리 위에 올리는 묘기를 보여주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사실 오아시스 콘서트는 단순히 유희적 공연이 아니다. 과거의 회한과 현재의 화해, 앞날의 환희가 똘똘 뭉친 인생 공부이기도 하다.
특히 돈트 룩 백 인 앵거 즉, 화내며 지난날을 돌아보지 않기는 갤러거 형제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중요한 화두다. 과거에 연연해 현재는 물론 앞날까지도 부정적인 것에 저당 잡힌 경우가 갈수록 많아지는데 오아시스의 음악과 갤러거 형제가 이를 무마시켜준다.
1990년대 젊은 시절을 보낸 중장년에겐 향수를 전하고, Z세대에겐 전설의 원형질이 무엇인지 보여준 오아시스 공연에 대해 오아시스 팬들이 16년 간 참아왔던 함성이 초음속(supersonic)으로 내지르는 중이다. 이처럼 오아시스는 오래되고 새롭다.
지난 7월 4~5일 영국 웨일스 카디프 프린시팰러티 스타디움에서 포문을 연 이번 투어는 오는 25~26일엔 일본 도쿄돔으로 이어진다. 양일 각각 일본 밴드 '아시안 쿵푸 제너레이션(ASIAN KUNG-FU GENERATION)', 일본 밴드 '오토보케 비바(おとぼけビ~バ~)'가 스페셜 게스트로 나선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