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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전 11시 광주 동구 옛 전남도청 앞 5·18민주광장에서 국가보훈부 주관 46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열렸다.
올해 기념식은 예년과 같은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가 아닌 옛 전남도청 일원에서 엄수됐다. 옛 전남도청 앞에서 정부기념식이 열린 것은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0년 이후 두 번째다.
보훈부가 옛 전남도청 일원을 정부기념식 장소로 선택한 배경에는 열흘간 이어진 5·18 항쟁의 최종 서사와 당시 도청 앞 분수대 광장에 모여 계엄 철폐를 외쳤던 시민들을 기리려는 의미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옛 전남도청은 단순한 행정기관 건물을 넘어 대한민국 현대사의 비극과 저항, 민주주의 정신이 응축된 공간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5·18 당시 시민 자치의 중심지이자 최후 항쟁지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크다.
옛 전남도청은 항쟁 기간 계엄군의 폭력 진압에 맞선 시민들의 집결지였다. 학생을 비롯해 노동자, 택시기사, 구두닦이, 넝마주이 등 신분과 계층을 초월한 시민들이 옛 전남도청으로 모여들었다.
이렇게 조직된 시민군은 옛 전남도청을 주요 거점으로 삼아 5·18 기간 광주 시민 자치의 중심축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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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전남도청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몸을 던진 열사들의 마지막 항쟁기가 서린 공간이기도 하다. 시민군은 1980년 5월27일 계엄군의 '광주재진입작전'에 맞서 옛 전남도청을 중심으로 최후 항전에 나섰다.
'시민군 대변인' 고(故) 윤상원 열사를 비롯해 '고교생 시민군'으로 불린 고 안종필·문재학 열사 등이 계엄군에 맞서다 산화했다.
옛 전남도청이 최후 항쟁지였다면 도청 앞 5·18민주광장은 민주화를 외친 시민들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단순한 도시 광장이 아니라 '국가폭력과 계엄에 맞선 시민 주권의 공간'이라는 상징성을 지닌다.
시민들은 5·18 직전인 1980년 5월14일부터 16일까지 사흘간 도청 앞 분수대 광장에 모여 전두환 신군부 독재 반대를 외치며 민족민주화대성회를 열었다. 16일에는 수만 명 규모의 시민과 학생들이 금남로에 모여 민주화를 요구했다.
계엄군의 대시민 집단 발포 이후인 5월23일부터는 민주수호 범시민궐기대회가 분수대 광장 일대에서 나흘간 열렸다. 궐기대회에서는 희생자 추모 묵념과 시민 성명서 낭독, 계엄군 규탄, 장례·헌혈·모금 논의, 향후 항쟁 방향에 대한 토론 등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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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은 2024년 12·3 비상계엄 사태 국면에서도 또다시 광장에 모였다.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수십여 차례에 걸쳐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규탄했다.
1980년부터 오늘날까지 민주광장이 수행하는 역할은 '시민 저항'과 '헌정질서 수호'라는 점에서 맞닿아 있다는 평가다.
5·18단체 한 관계자는 "1980년 계엄군에 맞서 시민들이 모였던 민주광장은 40여 년이 지난 오늘에도 민주주의 위기 때마다 다시 소환되고 있다"며 "광주는 계엄의 기억을 가진 도시이고 민주광장은 그 기억이 현재형으로 작동하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이어 "옛 전남도청과 민주광장은 단순한 추모 공간을 넘어 오늘날 민주주의의 경고와 실천의 장소로 확장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뉴시스
2026.05.18 (월) 14:4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