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담배는 물론 애들 학원도 줄였다…月 535만원 벌고도 지갑엔 '자물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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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담배는 물론 애들 학원도 줄였다…月 535만원 벌고도 지갑엔 '자물쇠'

가구당 月평균 535만원 벌어…7분기 연속 증가
실질소비지출은 0.7%↓…7분기만에 감소 전환
'필수소비'에만 여는 지갑…술·담배·의류 다줄여
고물가·탄핵정국·美 관세전쟁 등 복합위기 영향
"소비심리위축 신호…2차추경 등 확장재정 필요"

[나이스데이] #. 서울 동작구에서 혼자 사는 직장인 김진혁(31)씨는 최근 소비를 최대한 줄이는 '생존 소비'에 들어갔다. 회사 근처 카페에서 사 마시던 커피도 끊고, 즐겨 입던 의류 브랜드도 할인할 때만 눈여겨본다. 김씨는 "그냥 숨만 쉬고 있어도 월세, 관리비, 공과금 등으로 돈이 줄줄이 빠져나간다"며 "물가도 너무 높고 대내외적으로 위기가 들이닥치는 게 눈에 보이니까 필요한 일 말고는 최대한 돈을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가계소득이 7분기 연속 증가세를 이어갔지만, 국민들은 팍팍한 삶에 지갑을 굳게 닫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이어진 탄핵 정국, 고물가와 고금리, 미국 관세 압박 등 대내외 리스크가 겹치면서 가계는 '소비를 멈춘' 1분기를 보낸 것이다.

특히 고물가와 씨름하면서 어쩔 수 없이 돈을 써야 하는 생활 필수 품목에만 지갑을 열뿐, 학원비와 의류 구입비 같은 '선택적 소비' 품목에 대해선 허리띠를 졸라맸다.

전문가들은 소비 심리 회복 없이는 내수 진작이 어려운 만큼, 정부가 확장적 재정 정책을 통해 '소득은 늘어도 소비는 하지 않는' 구조적 위축 국면을 타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1인 이상 가구 月평균 535만원 벌었지만…지갑엔 '자물쇠'

30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5년 1분기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전국 1인 이상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535만1000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5% 증가했다.

가구소득은 2023년 3분기 이후 7분기 연속 증가세를 보였다. 물가 변동 영향을 제거한 실질소득도 2.3% 늘며 4분기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전체 소득 증가세를 이끈 건 근로소득이었다. 상용직 증가와 임금 인상 영향으로 근로소득은 341만2000원으로 뛰었다. 1년 전과 비교해 3.7% 늘어난 수치다.

사업소득과 이전소득도 각각 90만2000원(전년 대비 3.0%↑), 87만9000원(7.5%↑)으로 뛰었다.

이처럼 가계의 지갑 사정은 다소 나아졌지만, 국민들은 되려 지갑에 자물쇠를 채우고 있는 상황이다.

가구당 월평균 소비지출은 295만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4% 증가했으나 그 증가폭은 둔화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2분기 4.6%를 기록했던 소비지출 증가율은 그해 3분기 3.5%로 떨어졌고, 4분기에는 2.5%로 낮아졌다. 올해 1분기에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였던 2021년 1분기(1.6%) 이후 처음으로 1%대로 내려앉았다.

특히 물가 상승을 감안한 실질 소비지출은 전년 동기 대비 0.7% 줄었다. 2023년 2분기(-0.5%) 이후 7분기 만의 감소 전환이다.

2023년 당시엔 고물가·고금리가 경제 위기 요인의 대부분을 차지했다면, 올해 1분기의 경우 그에 더해 정치적 불확실성과 대외 통상 리스크까지 위기 국면이 더 심화된 상황이다. 그만큼 소비심리 회복이 더뎌질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 실질소비지출 감소폭은 2020년 4분기(-2.8%)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며, 1분기 기준으로는 코로나 사태 초반인 2020년 1분기(-7.4%) 이후 5년 만의 최대치다.
◆'필수 소비'에만 여는 지갑…교통비·의류비는 물론 술·담배도 줄였다

이를 반영하듯 국민들은 식료품, 주거비, 병원비처럼 피할 수 없는 지출에만 돈을 쓰고, 자동차 구입이나 의류, 술·담배 같은 '선택 가능한 소비'에는 지갑을 걸어 잠근 모습이다.

예컨대 식료품·비주류음료 지출과 주거·수도·광열비는 각각 1년 전보다 2.6%, 5.8% 늘었지만 교통·운송 지출은 3.7% 감소했다.

전기·가스 등 연료비(7.9%)와 월세(6.2%), 기타 주거 관련 서비스(5.7%) 지출은 모두 증가했으나, 자동차를 사는 데 쓴 돈은 12% 줄었고, 주류·담배 소비는 4.3% 줄었다.

병원비 등 보건 지출도 전년 대비 2.2% 늘었으나, 의류·신발 구입에 쓴 돈은 4.7% 줄었다. 교육 관련 소비지출도 2.6% 감소했으며, 사교육비 중에서도 '보습·속셈학원' 지출은 7.9% 줄었다.

특히 소득 수준별로는 양극화 양상이 더욱 뚜렷했다.

1분위(소득 하위 20%) 가구는 소득이 줄었음에도 소비지출이 3.6% 증가했다. 특히 주거·수도·광열(23.2%), 식료품·비주류음료(21.2%), 보건(11.5%), 음식·숙박(11.5%) 등 줄이기 어려운 생계 괸련 항목에 대부분의 돈이 들어깄다.

반면 5분위(소득 상위 20%) 가구는 자동차, 오락문화, 의류 등에서 지출을 줄이며 전체 소비 증가율이 2.1%에 그쳤다.

통계청 관계자는 "1분위는 필요한 지출을 줄일 수 없었던 반면, 고소득층은 자동차 등 내구재 소비를 조절한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소비심리 위축 신호…정부, 2차 추경 등 확장재정 정책 써야"

전문가들은 이번 통계가 단순한 경기침체가 아닌 '심리적 위축'의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며, 체감경기 회복 없인 소비 심리가 회복되긴 어려울 수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정부가 적극적 재정 정책을 통해 소비 진작에 나서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소득이 늘어도 소비가 반응하지 않는 것은 정치적 불확실성과 실물경제 불안감이 소비 심리를 위축시키고 있기 때문"이라며 "소비는 단순히 '돈이 있냐 없냐'보다 '쓸 수 있을 것이라는 신뢰'에 좌우되기 때문에 체감 경기를 살려내지 못하면 소비 심리 회복도 요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강병구 교수는 "계엄 사태 이후 정치·사회는 양극화됐고, 내수 부진 장기화와 미국 관세 전쟁이 겹치며 한국 경제는 위기를 맞있다"며 "결국 무너져 가는 내수 기반을 살리기 위해선 2차 추경 등 정부의 확장적 재정 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