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시스·스웨이드·펄프…1990년대 브릿팝, 어떻게 韓 젠지 세대를 사로 잡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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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아시스·스웨이드·펄프…1990년대 브릿팝, 어떻게 韓 젠지 세대를 사로 잡았나

오아시스 16년 만의 내한공연
스웨이드, 지난해 내한 이어 부산록페 헤드라이너
펄프, 인천 펜타포트 록페 통해 결성 47년 만에 첫 내한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에 영감 준 블러 데이먼 앨번도 주목

[나이스데이] '오아시스', '스웨이드', '펄프' 등 1990년대 브릿팝 전성기를 이끌었던 '브릿팝 밴드 4대 천왕' 중 3대 밴드가 하반기에 연이어 내한한다. 올해가 국내 브릿팝 열풍의 새로운 원년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1일 대중음악계에 따르면, 오아시스는 오는 10월21일 오후 8시 경기 고양 고양종합운동장에서 한국 팬들과 재회한다.

지난달 재결합 투어를 시작한 오아시스가 16년 만에 내한해 선보이는 공연이다. 2006년 전석 매진을 기록한 첫 내한공연에 이어 2009년에는 단독 공연과 페스티벌 헤드라이너로 한 해에만 2번 한국을 찾았다. 당시 투어에서 좀처럼 선보이지 않았던 '리브 포에버'를 특별히 연주할 만큼 한국 공연과 팬들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표현해 왔다.

2016년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을 통해 첫 내한공연했던 스웨이드는 8년 만인 작년 8월 첫 단독 내한공연했다. 여전한 브렛 앤더슨의 비음을 비롯 전성기 기량을 인정 받은 이들은 오는 9월 26~28일 부산 사상구 삼락생태공원에서 열리는 '2025 부산국제록페스티벌' 헤드라이너로 나선다. 스웨이드는 90년대부터 국내 마니아층을 보유했는데, 최근 들어 이를 거듭 확인 중이다.

4대 천왕 중 가장 실험적이고 비주류로 통한 펄프는 이날부터 3일까지 인천 송도 달빛축제공원에서 열리는 '2025 인천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두 번째날 헤드라이너로 나선다. 이들의 내한공연은 결성 47년 만에 처음이다.

펄프의 내한 타이밍이 브릿팝 열풍의 정점이 아닌 우연의 일치라는 해석도 있긴 하다. 수년 전에 이미 페스티벌 주최 측에서 연락을 취했던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펄프의 극적인 내한은 27년 만의 UK 앨범 차트 1위와 영국의 세계적인 음악 페스티벌 '글래스턴베리' 출연으로 세계 음악 팬들의 관심을 모은 상태여서 국내 브릿팝 팬들에게는 행운의 드라마가 됐다.

블러의 데이먼 앨번(데이먼 알반)은 최근 다른 이유로 국내에서 조명됐다. 국산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을 통해 한국인 첫 토니상을 받은 박천휴 작가가 이 작품의 모티브를 블러의 프런트맨 데이먼 앨번의 솔로곡 '에브리데이 로봇'에서 얻은 사실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해당 곡이 실린 동명의 앨범은 브릿팝과는 거리가 멀다. 저음의 드럼 머신 심장 박동과 고음의 핑킹 어쿠스틱 사운드로 구성됐다. 다만 브릿팝의 상징인 그가 공교롭게 2025년 국내에서 같이 회자된다는 것만으로도 브릿팝 팬들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할 이유는 충분하다.

또한 브릿팝의 또 다른 중요 팀인 '리버틴스(The Libertines·리버틴즈)'가 올해 상반기에 첫 내한공연하기도 했다.
브릿팝 계보를 확장한 영국 록밴드 '뮤즈(MUSE)'는 10년 만인 오는 9월27일 인천문학경기장 주경기장에서 한국 팬들과 재회한다. 뮤즈는 지난 2007년부터 2015년까지 총 여섯 번의 내한 공연을 진행하며 국내 팬덤을 구축했다. 이번 내한이 일곱 번째다.

특히 이번 브릿팝에 대한 열풍은 젊음 세대의 관심도 눈길을 끈다. 인터파크 기준 오아시스 예매 연령대별 예매율을 살펴보면 10~20대 비율이 약 64%다.

백예린의 '샴페인 슈퍼노바', 방탄소년단 정국의 '렛 데어 비 러브', 로제의 '돈트 룩 백 인 앵거' 등 국내 젊은 인기 가수들이 오아시스 노래를 커버한 영상도 크게 화제가 됐다.

오아시스는 1994년부터 1997년까지 영국에서 가장 손꼽히는 대형 밴드였다. 처음 세 장의 앨범인 '데피너틀리 메이비(Definitely Maybe)', '(왓츠 더 스토리) 모닝 글로리((What's The Story) Morning Glory)', '비 히어 나우(Be Here Now)'가 수천만 장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정규 앨범 7장 모두 발매와 동시에 UK 앨범 차트 1위에 오르고 전 세계적으로 9000만 장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 중이다.

리엄의 냉소적인 보컬과 노엘의 일그러진 기타 연주는 로큰롤을 다시 차트에 올려놓았다. 맨체스터에서 나고 자란 이들은 노동자 계층이라는 막다른 골목의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밴드를 결성했고 전설이 됐다.

하지만 갤러거 형제 사이의 곪아가는 감정이 팀 내 긴장감을 조성했다. 2000년 바르셀로나 공연 백스테이지에서 두 사람은 물리적 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두 사람은 이후 관계를 회복한 듯 보였으나, 내분은 2009년 8월28일 파리 근교의 록 엉 센(Rock en Seine) 뮤직 페스티벌의 공연을 취소하기 직전까지 계속됐다. 노엘은 당시 성명에서 "전 리엄과 더 이상 함께 일할 수 없었다"고 발표했다.

이후 두 형제는 불화를 이어가면서 각자 솔로 활동은 성공적으로 해왔다. 동시에 오아시스 재결합에 대한 질문도 끊임없이 받았다. 작년 8월27일 두 형제는 다시 뭉치기로 했다고 발표하며 전 세계 음악 팬들을 들썩이게 했다.
김두완 대중음악 평론가(한국대중음악상(한대음) 선정위원(모던록 분과장))는 "기본적으로 브릿팝의 매력은 누구나 쉽게 적응하고 즐길 수 있는 다양성에 있다. 브릿팝의 광범위한 사운드 스펙트럼은 무한한 재미를 낳는 놀이와 같기 때문에 다른 장르나 스타일보다 더 큰 재미를 줄 것"이라면서 "더 나아가 최근 화제를 모으고 있는 다수의 브릿팝 그룹은 '폭발적인 전성기-해체로 인한 긴 공백기-극적인 재결합과 활동 재개'라는 드라마 같은 서사를 갖고 있다"고 짚었다.

"이들의 전성기를 함께 호흡하지 못한 젊은 층은 이들의 흥미로운 야사와 노래들을 유튜브나 소셜 미디어 같은 온라인을 통해 풍부하게 학습해 왔을 텐데, 때마침 이뤄진 이들의 컴백과 내한은 그야말로 '놓쳐서는 안 되는 오프라인 체험'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지난달 4일 오아시스가 영국 웨일스 카디프에서 연 16년 만의 재결합 공연에 다녀온 조혜림 음악콘텐츠 기획자(한대음 선정위원)는 "브릿팝은 단순한 장르를 넘어 하나의 세대 정서를 담은 문화 현상이었다. 지금 이 열풍은 단순한 복고가 아니라, 자기 감정에 솔직하고 청춘을 대변했던 음악을 향한 갈망의 반영처럼 느껴진다"면서 "특히 요즘 세대가 오아시스와 같은 브릿팝에 열광하는 걸 보면, 감정의 밀도와 서사의 힘은 시대를 초월한다는 걸 새삼 느낀다"고 말했다.

그럼 브릿팝은 무엇인가. 1990년대 이후 영국의 기타 중심 대중음악? 권범준 음악 평론가가 브릿팝의 정의와 시대적 배경을 담아낸 '브릿팝(BRITPOP)'(2020·안나푸르나)에 따르면, 브릿팝은 "1980년대의 문화적, 사회적 유산에 대한 반응"이다.

브릿팝은 1980년대 '철의 여인'으로 불린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로 대변되는 보수에 대한 저항이었고 음악뿐 아니라 영화, 패션 그리고 언론까지 아우르는 문화 운동이었다는 것이다. 당시 전 세계 문화는 미국의 그런지가 우위를 점하고 있었는데 브릿팝은 이 흐름과 차별화되며 독점적인 지위를 확보한다.

2000년대 전후 브릿팝 사운드 재현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밴드 '너드커넥션' 소속사 유어썸머 이소영 대표는 "요즘 젊은 세대가 80~90년대 브릿팝에 주목하는 것은 단순한 복고 트렌드로 환원될 수 없다. 당대 청춘들이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토해낸 날것의 정서, 타협 없는 태도, 그리고 음악 안에 깃든 신념이 지금 다시 공감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면서 "그 시절의 음악에 담긴 또렷한 주제의식이 여전히 유효함은 부정할 수 없다"고 봤다.

펄프의 기타리스트 마크 웨버는 이번 내한을 앞두고 국내 언론과 진행한 서면 인터뷰에서 "1990년대 중반 우리가 음악을 하던 그 시기는 정말 특별한 에너지가 넘치던 시기였다. 물론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전 세계적으로 퍼질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지만, 다시금 그 시절의 밴드들이 팬들 곁으로 돌아오는 걸 보며 음악이 가진 힘을 실감하게 된다"고 했다. "과거의 팬들에게는 그 시절의 감정을 다시 떠올리게 하고, 지금의 세대에게는 새롭고도 낯선 세계를 접하는 창구가 되겠죠. 세대를 넘나드는 연결, 그게 아마 브릿팝이 지금 다시 회자되는 이유 아닐까?"라고 덧붙였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부는 브릿팝 열풍을 국내로 한정한다면, 작금의 현상은 브릿팝과 오아시스를 분리해서 설명해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임희윤 음악평론가(한대음 선정위원)는 "오아시스에 대한 인기도와 인지도가 4대 천왕 중 나머지 3개 팀(블러, 펄프, 스웨이드)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오아시스는 4개의 핵심 코드의 단순한 구조 속에 웬만한 팝송보다 더 캐치(catchy)한 멜로디와 제창 구간이 독보적이다. 예술적 록의 복잡한 미학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이도 접근하고 매혹될 수 있는 음악을 구사한다"면서 "여기에 소셜 미디어와 캔슬 컬처 시대에는 찾아보기 힘든 갤러거 형제의 어록이 다양한 형태로 바이럴되면서 완전히 독보적인 록 레전드가 돼버렸다"고 부연했다.

임 평론가는 그러면서 젊은 세대의 오아시스에 대한 새로운 열광은 디지털화되고 규격화된 현재의 디지털 팝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해석했다. '비균질의 스토리와 사운드, 그러나 매우 팝적인 음악'이라는 오아시스의 이율배반적 조합이 젊은 세대에서 매혹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실제 작년 7월 경기 고양 일산 킨텍스 1전시장 1,2홀에서 열린 노엘 갤러거의 솔로 내한공연 '노엘 갤러거 하이 플라잉 버즈 라이브 인 코리아'(NoelGallagher's High Flying Birds Live inKorea)를 관람한 10~20대 팬들은 갤러거에 대한 인위적 존중이 아닌 그의 매력 자체에 열광한 모습이었다.

오아시스 티셔츠를 입고 그룹 '뉴진스'가 일본 팝아트 거장 무라카미 다카시와 협업한 백팩을 멘 채 공연장을 찾은 10대 소녀 팬들이 다수 눈에 띄었는데, 갤러거·오아시스에 대한 이들의 열광은 취향이 아닌 인식에 가까웠다.

임 평론가는 "브릿팝이 세계적으로 다시 조명 받거나 관련 음악가들이 컴백하는 현상에는 의미가 있다. 비균질, 천진함, 진정성 신화, 날것의 에너지 같은 것에 대한 디지털 세대의 매혹이 브릿팝뿐 아니라 다양한 세기말, 세기초 음악 장르나 대중문화에 대한 레트로 붐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 근년의 뚜렷한 문화적 흐름"이라고 톺아봤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