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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법원 내부에서는 수사검사의 부재로 인해 공판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공판검사들의 전문성 강화가 시급하다는 조언도 나온다.
■공판검사 "의견서 제출"…빈틈 노리는 피고인들
정 장관의 직무대리 검사 복귀 지시 후 수사검사들이 대거 재판 참여에서 배제되면서 법정 분위기가 달라졌다. 검찰 측은 즉각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잦아졌고 피고인 측은 수사검사 배제를 요청하며 검찰 규모의 축소를 전략적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전날 서울중앙지법에서 진행된 문재인 전 대통령의 뇌물 수수 혐의 사건 2차 공판준비기일에서 재판부가 증거목록의 재작성을 요구하자 검찰 측은 "인력이 둘이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두 달 정도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6월 1차 공판준비기일 당시 재판에는 5명의 검사가 출석했었다.
다른 재판에서도 마찬가지다. 10명 안팎의 검사들이 출석하던 대형 사건 재판에 현재 공판검사 1~2명만 참여하고 있다. 검찰 측이 재판장의 질문에 "의견서를 제출하겠다"거나 "다음 기일에 말씀드리겠다"며 즉각적인 대응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잦아진 모양새다.
대규모 주가조작 사건 재판에서 한 변호인은 "법무부가 직무대리 검사의 복귀를 지시했는데 이 재판에서도 적용되는 거냐"고 물었다. 직무대리 검사 복귀 지시를 전략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이에 검사가 "직무대리 신청을 해서 재판에 들어왔다. 증권, 경제 범죄는 직무대리가 가능하도록 했다"고 설명하자, 변호인은 "이 사건 수사검사가 누군지 석명을 요구한다"고 재판장에 요청했다.
판사들 사이에서는 수사검사가 사실상 법정에서 배제되면서 재판 지연과 공판의 질 저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답답한 상황"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올 정도다.
공판검사도 기록을 철저히 검토하고 사건을 파악하겠지만, 직접 증거를 수집하고 피의자 및 참고인 조사에 참여한 수사검사만큼 깊이 있는 이해도를 가지기는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것이 법원 내부의 의견이다.
서울의 A부장판사는 "뭘 물어봐도 직답이 안 나오고, 시간은 시간대로 계속 공전된다"며 "결국 다음 기일을 잡아야 하고, 의견서를 제출하고 또 그다음 기일에 논의해야 하는 비효율적인 상황이 반복된다"고 비판했다.
이어 "기일의 목적은 사건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모여 논의하는 것"이라며 "단순한 사건이야 괜찮지만, 복잡하고 중요한 재판은 수사 단계부터 관여하지 않은 공판검사가 감당하기에 너무 비효율적"이라고 덧붙였다.
증인의 진술 번복이나 진술의 모순된 부분을 발견하지 못하는 등 공소유지가 부실해질 수 있고 실체적 진실 발견이라는 재판의 본질적인 목적이 훼손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법정을 검사실로 착각하기도…"공판검사 키워야"
그러나 수사검사가 재판에 들어와 수사 과정에서 쌓아온 심증을 바탕으로 객관성을 잃고 판사가 제시한 쟁점을 벗어나거나 불필요한 증거를 쏟아내는 등 그동안 문제점이 있어 왔다는 견해도 많다.
판사 입장에서 검사의 객관 의무를 다하지 않고 검사실에서 심문하듯이 증인신문을 하는 모습을 보면 안 좋은 인식을 가지게 된다는 말도 나왔다.
대형 사건을 두루 심리한 현직 B부장판사는 "법정에서의 언어와 수사 절차에서의 언어가 분명히 다른데 재판 단계에서 아직도 수사하고 있는 것처럼 하기도 한다"며 "객관성을 가지지 못한 검사님들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추진하고 있는 수사와 기소의 분리가 틀렸다고 얘기하기에는 어렵다"며 "지금의 혼란은 과도기 단계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덧붙였다.
수사-기소 분리는 국제적인 흐름을 따라가려는 정책의 변경일 뿐이며, 확증편향돼 기소를 목적으로 수사 및 공소유지를 짜 맞추려고 하는 유혹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판사들은 수사검사의 부재로 발생하는 법정에서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단기적으로는 ▲기소검사의 공판 참여 ▲대형 사건의 예외적 '직접 관여'(직관) ▲전문분야 검사 공판 참여 등을 허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공판검사가 보다 수사기록 검토를 철저히 하고 재판 진행 능력을 빠르게 키워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중앙지법의 C판사는 "수사검사가 기소도 하고 공판에 관여하는 것이 문제인데 기소검사가 공판을 진행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인다"며 "수사검사가 '공판 카드'에 뭘 적고 공판검사는 그것을 보고 재판을 진행하기도 하는데 그 체제를 바꿔 기소검사, 공판검사가 책임지고 재판을 진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B부장판사는 "전문적인 사건이나 대형 사건의 경우 잘 모르는 공판검사들이 재판에 들어오면 비효율적"이라며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원칙적으로 분리를 하되 부득이한 경우 직관을 하는 것도 금지할 이유는 없다"고 제언했다. 이어 "어떻게해서든 공부를 해서 지연시키지 않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장기적으로는 공판검사들이 재판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교육과 훈련이 필수적이며, 불필요한 행정 업무를 줄이고 공소유지와 재판 준비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또 수사검사와의 긴밀한 협업 시스템을 구축하고 공판 분야 전문성과 노하우가 축적될 수 있도록 인력을 보강하는 것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