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계엄 1년…5·18 헌정 의의 재조명, 정가 재편 '촉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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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계엄 1년…5·18 헌정 의의 재조명, 정가 재편 '촉매'로

'80년 트라우마' 광주·전남, 불의한 권력 항거 이끌어
45년 전 계엄 맞선 5·18정신 재조명…헌법수록 '기대'
지역정가, 親李 공고화…향후 선거 구도 재편 효과도

[나이스데이] 12·3 비상 계엄 사태가 어느덧 1년을 맞는다. 45년 전 신군부에 맞서 싸운 트라우마가 아물지 않은 광주·전남에서는 반헌법적 계엄에 대한 심판론이 거셌다.

12·3 계엄 해제와 탄핵 정국을 거치며 5·18민주화운동 정신의 헌정사적 의의가 재조명됐고 민주주의 회복 열망이 강하게 결집한 광주·전남 민심은 정권 교체를 이끌었으며 지역 정가에는 새 정부의 공고한 지지 기반이 형성됐다.

◆'1980년 트라우마' 자극, 불의에 또 맞선 광주·전남

지난해 12월3일 느닷 없는 계엄 선포에 지역 민심은 거세게 분노했다. 선포 직후 광주시민 수백여명은 5·18 당시 시민군의 최후 항쟁지인 옛 전남도청 앞 5·18민주광장으로 뛰쳐나왔다.

시민들은 밤새 뜬눈으로 국회의 계엄 해제 의결과 6시간여 만의 계엄 해제 선언을 지켜보며 광장을 지켰다. 불법 계엄에 맞서겠다는 결의는 계엄 이튿날 오전 '광주시민비상시국대회'로 이어졌다.

광주·전남 시민사회는 '윤석열 정권 즉각 퇴진·사회대개혁 광주비상행동'을 꾸려 불의한 권력에 또 한 번 저항했다.

매주 주말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계엄 규탄·탄핵 집회는 윤 전 대통령 파면까지 122일간 47차례 열리며, 헌정 회복에 대한 국민적 염원을 이끌었다.

12·3계엄은 '1980년 계엄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지역민들에게는 덧난 상처이기도 했다.

광주 소재 국가폭력트라우마치유센터에서는 지난해 12월 한 달간 12·3계엄에 따른 정신 상담 216건이 진행됐다. 전국 각지의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계엄 관련 상담 사례를 합친 것보다 더 많다.

그만큼 국가 폭력을 이미 경험한 지역민들이 12·3계엄으로 인한 정신적 피해가 더욱 컸던 것으로 풀이된다.

5·18의 역사적 경험 때문인지, 계엄 직후 광주시와 전남도의 대응 역시 사뭇 달랐다.

광주시는 각계각층 인사와 함께 '헌법 수호 비상계엄 무효 선언 연석회의'를 열어 "헌법적으로 무효인 계엄을 국회 의결에 따라 즉각 해제하라"며 민주공동체 수호 의지를 밝혔다.

전남도지사도 "이번 비상계엄은 당혹스럽고 참담하기 그지 없다. 민주주의가 참혹했던 1980년 이전 군사정권 시절로 후퇴했다. 헌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한 비상계엄은 즉시 철회돼야 한다"며 불법 계엄에 맞섰다.


◆5·18 '헌정사적 의의' 재조명…헌법 수록 기대감

반헌법적 12·3계엄을 저지하고, 민주 헌정 질서 안에서 대통령 탄핵과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이끌어낸 주역은 '시민'이었다.

계엄의 밤 국회 장악 위기에 시민들이 계엄군을 막아섰고, 국회 관계자와 보좌관들도 합류하며 계엄 해제 의결을 도왔다.

일부 계엄군도 부당한 명령에 따르지 않고 소극적으로 대응, 물리적 충돌의 불상사 만큼은 피했다. 계엄 해제 의결 이후에도 광주·전남 지역민을 비롯한 전국 각지의 시민들이 연일 불법 계엄을 규탄하며 윤 전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냈다.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한겨울 맹추위 속에서도 '선결제'로 따뜻한 음료를 나누는 등 서로 연대하며, 민주 헌정 질서 회복을 함께 일궜다.

불의한 권력에 맞선 시민이 연대하며 민주 헌정을 지켜낼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45년 전 신군부에 맞서 항거한 5·18의 경험과 항쟁 정신이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동시에 45년 만에 되살아난 민주주의 수호와 나눔·연대의 5·18정신을 헌법 전문에 실어, 민주 헌정의 굳건한 정신적 표상으로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에도 힘이 실린다.

새롭게 출범한 이재명 대통령과 집권여당도 5·18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을 개헌안에 담겠다고 거듭 공언했다. 다른 개헌 쟁점과 달리 5·18 헌법 수록 만큼은 여야 사이에 큰 이견이 없다.

최정기 전남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이제는 5·18 정신을 우리 민주주의의 시금석(試金石)으로 평가해야 한다. '불의에 굽히지 않는 정의'라는 바탕 위에서 시민 주도의 끊임없는 민주주의 완성 과정이 5·18정신이다"며 헌법 정신 격상 필요성을 강조했다.


◆광주·전남 정치권 강력 반발…이재명 체제 공고화

12·3 불법 계엄에 광주·전남 정가도 즉각 거세게 반발했다. 지역 정치권은 시민사회와 함께 "헌정 질서 파괴이자 명백한 정치 쿠데타"로 규정, 윤석열 정권 즉각 퇴진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민주광장 시민대성회에서 "1980년의 아픔을 겪은 광주는 비상계엄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비판했고, 김영록 전남지사는 긴급성명을 통해 "수십년 쌓아온 민주주의 성과가 무너졌다"고 강력 성토했다.

광주시의회와 전남도의회는 의원 공동 성명을 통해 대통령의 내란, 국가반란죄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엄벌을 촉구했다. 나주·목포 등 전남 각 시·군의회도 연이어 퇴진 성명을 냈고, 광주 5개 자치구의회는 국회 앞 규탄 집회까지 열었다.

이로 인해 시·도의회는 이듬해 예산안 심의를, 기초의회는 행정사무감사 등 주요 의사 일정을 잠정 연기하는 등 지역 정치 기능이 일시 마비되기도 했다. 군 공항 이전이나 국비 확보 등 지역 현안들도 한동안 후순위로 밀렸다.

불법 계엄에 대한 정치인 별 대응도 선거 구도 변화의 주요 변수로 등장했다.

강경 대응에 나선 정치인들은 지지층 결집 효과를 얻는 반면, '신중 모드'를 보이거나 아예 침묵한 인사들은 "민주주의 위기를 방관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민주당 텃밭이자 심장부인 광주·전남에서는 12·3 불법 계엄이 이재명 체제를 공고히 하는 정치적 촉매제 역할을 해 대선 압승으로 이어졌다는 해석도 나온다.

지역 정가 한 관계자는 "12·3 계엄은 광주·전남 지역 정치권에 역사적 트라우마를 통한 정서적 충격과 함께 정치 세력 간 내부 노선 차이를 선명하게 부각시키고, 후보군 재편 등 선거 구조를 일정 정도 재편하는 압력 요인으로 작용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