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후보들 앞다퉈 의료공약 발표…의료계 "실효성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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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후보들 앞다퉈 의료공약 발표…의료계 "실효성 의문"

이재명·홍준표 등 의료계 표심잡기 나서
"인력 확대·의료전달체계 개선 등 과제"
"의대 신설보다 근무환경 개선 더 시급"
"의료계 요구 수용, 전공의 복귀는 의문"

[나이스데이] 이재명·홍준표 등 각 당의 대선 경선 후보들이 의료 정책을 발표하고 대한의사협회(의협)를 방문하는 등 의료계 표심 잡기에 나섰다. 의료계에선 공공 의료 강화 공약, 의대 정원 등 의료계 요구안 수용 의지에 공감하면서도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동시에 나오고 있다.

23일 의료계 등에 따르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는 전날 페이스북을 통해 "공공 병원을 확충하고, 공공 의대를 설립해 공공·필수·지역 의료 인력을 양성하겠다"면서 "(공공 병원을 확충해) 응급, 분만, 외상 치료 등 필수 의료는 국가가 책임지겠다"고 밝혔다. 또 "의대 증원을 합리화하겠다"면서 "모든 이해 당사자가 참여하는 사회적 합의에서 다시 출발해 인공지능(AI)과 첨단 과학기술 발달에 따른 시대 변화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공 병원은 적정 진료를 통해 진료비 부담을 낮춰 쪽방 주민, 이주노동자, 장애인 등 취약계층의 의존도가 절대적으로 높다. 지방의료원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공공 병원은 전체 의료기관 중 6% 가량에 불과하다. 공공 병상 비중도 전체 병상의 약 10% 미만에 그치고 있다.

의료계에선 이 후보의 공공 의료 강화가 말 뿐인 공약에 그치지 않으려면 실질적인 공공 병원 운영을 위한 인력 확대, 공공 병원과 상급종합병원 간 원활한 환자의뢰체계(의료전달체계), 민간 병원의 공적 기능 강화, 병상의 효율적인 구조조정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립중앙의료원 공공보건의료지원센터장을 지낸 임준 인하대병원 예방관리센터장(예방관리과 교수)은 "공공 병원 확충은 지방의료원, 적십자병원 같은 지역 거점 병원 역할을 할 수 있는 병원의 역량을 키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직에 필요한 최소 인력을 고려하면 최소 60명 이상의 전문의를 확보하고, 간호사도 1·2등급(종합병원 간호사 1명이 돌보는 환자 수 2명 또는 2.5명 미만)을 확보해야 지역 환자의 사망률을 낮추고 대학병원의 진료 과부하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중증도가 높은 질환을 제외한 대부분의 질환은 지역 내에서 빠르게 처치하고 수술할 수 있도록 응급실, 중환자실, 수술실, 등을 실질적으로 가동할 수 있어야 지역 의료의 질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성환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회장도 "의료전달체계를 대폭 손질해 공공 병원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공공 병원 인력 확충에 있어 지역 내 흉부외과, 신경외과 등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 인력 확보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역 병원의 경우 수술 건수가 적다보니 임상 경험을 쌓을 기회가 부족해 그나마 부족한 의사가 추가로 이탈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서울의 대형병원으로 환자 이탈이 가속화돼 의료의 질이 더 떨어지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 회장은 "지방 각지의 보건소나 보건지소 등에서 근무하는 공중보건의사(공보의)들이 지역에서 환자를 충분히 볼 수 있도록 해 술기가 녹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지역 거점 병원 간 순환 근무를 통해 인력을 확충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공공 병원이 제 기능을 하려면 근무환경 개선 등을 통해 기존의 인력을 활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한 예로 흉부외과는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고난도 수술이 많아 숙련된 흉부외과 전문의는 물론 첨단 장비와 시설, 마취과 전문의, 심장내과 전문의, 심폐기사, 전문간호사 등 지원 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아무리 수술 실력과 경험이 풍부한 의사라 할지라도 이런 인프라 없인 환자를 제대로 치료하거나 살릴 수 없다.

민간 병원이 공공 병원의 기능을 한다면 정부가 이를 지원해 지역 주민들이 적시에 최적의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지역 완결형 의료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임 교수는 "공공 병원 확충은 10년 이상의 장기적 비전을 갖고 사회적 합의를 거쳐 추진해야 한다"면서 "민간 병원에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병상을 구조조정해 병상 이용의 효율성을 높이고, 유럽처럼 정부가 공공 병원의 역할을 하는 민간 병원에 비용을 투입해 관리한다면 공공병상 비중을 40~50% 수준으로 확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학령 인구 감소 속에서 공공 의대 신설이 실질적인 지역 의료 개선으로 이어질지 의구심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단시간 내 부속병원 부지나 의대 교수 등을 확보해 의료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어렵다는 이유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A 교수는 "의대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인적자원인 의대 교수 등을 양성하고, 의대 교육을 뒷받침할 수 있는 부속병원까지 갖춰야 하는데, 보통 수 년이 걸린다"면서 "의학교육의 질이 저하되고 예산 낭비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정재훈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페이스북에 "공공의대는 어디까지나 장기적 관점의 대응”이라면서 "설립되더라도 의사 배출까지는 10년 이상이 걸리고 지역 소멸과 재정 악화 등이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예상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래 세대를 위한 근무환경 개선과 이탈 전공의 복귀 지원 등을 통해 현재 인력을 필수의료와 공공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환경 조성이 더 시급하다"고 말했다.

홍준표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는 의료계의 요구를 전폭적으로 수용하겠다고 밝혔지만,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의정 갈등의 해결책이 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홍 후보는 전날 의협과 비공개 간담회 직후 "의료계의 요구 4가지를 집권하면 바로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의협은 교육이 불가능한 의대 입학 정원 조정, 의대 교육 여건에 대한 의학교육평가원의 재인증 실시, 필수의료정책 패키지 등 의료개혁 중단, 의료계와 논의를 통한 보건의료 정책 재설계를 요구하고 있다.

의료계 관계자는 "이미 전공의 절반 이상은 종합병원, 개원가에 취업한 상태이고 다른 세상을 경험해 수련병원으로 복귀할지 의문"이라면서 "진료지원(PA)간호사가 전공의의 빈 자리를 상당 부분 메우고 있는 등 달라진 의료 환경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