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K팝·J팝, 더 자주 더 자연스럽게 만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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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K팝·J팝, 더 자주 더 자연스럽게 만날 것"

일본 내 K팝 인기 여전…한국선 J팝 붐 리바이벌
양국 간 합작 엔터 기업 활약… K팝·J-팝도 아닌 'X-팝' 내세우는 팀도
협업 형태 다양화…인디 신 교류도 활발

[나이스데이] 지난 22일 한일 국교정상화가 60주년을 맞은 가운데, 한일 양국 간의 대중음악 교류가 더욱 활발해지는 모양새다.

일본에서 K-팝이 여전히 인기를 누리고 있고, 국내에선 J-팝 붐 리바이벌 열풍이 불면서 접촉면이 더 넓어지고 있다. 대형 엔터테인먼트사 간 합작은 물론 인디 신(scene) 뮤지션 간 협업도 다양해지면서, 양국의 뮤지션들이 앞으로 그려나갈 그림이 더 다채로워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

사실 일본과 한국의 음악 시장 규모는 차이가 있다. 국제음반산업협회(IFPI)가 공식 홈페이지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글로벌 마켓 오버뷰(GLOBAL MARKET OVERVIEW) 2025'에서 7위에 올랐다.

일본은 미국에 이어 2위다. 하지만 최근 추세를 보면 양국 음악 업계는 대등한 관계를 보이고 있다.

일본은 K팝의 글로벌 감각을 배우는 동시에 한국 뮤지션들의 역량에 놀라는 중이다. 지난달엔 업계 주요 5개 단체와 정부 기관이 협력해 '제 1회 뮤직 어워즈 재팬 2025(MUSIC AWARDS JAPAN 2025)'를 창설하는 등 한국에 주도권을 뺏긴 아시아 음악 시장의 패권을 되찾기 위해 노력 중이다. 한국은 J-팝의 다양성을 부러워하면서, 1억2000만명이 넘는 현지 내수 시장을 돌파구로 삼고 있다.

◆일본은 한류 열풍의 출발지
일본에서 한국 가수들의 활약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1980년대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현지에서 입지를 굳힌 '가왕' 조용필을 비롯해 계은숙, 김연자 등이 1980년대 현지 최고 권위의 가요 프로그램인 NHK '홍백가합전' 등에 출연했다.

그러다 한국 대중음악의 밀레니엄은 가수 보아와 함께 왔다. 2000년 한국에서 데뷔한 보아는 이듬해 5월 일본 첫 싱글 '아이디; 피스 비'(ID; Peace B)로 현지에 데뷔했다. 한류 K팝의 시동이었다.

2002년 보아는 첫 정규 앨범 '리슨 투 마이 하트(Listen to my heart)'로 한국가수 처음 일본 오리콘 차트 1위에 오르는 등 아시아의 별'로 통하며 명실상부 '한류스타의 원조'가 됐다.

데뷔 초창기 아카펠라 그룹을 표방한 '동방신기'는 '풀뿌리 전략'을 바탕으로 일본 곳곳의 작은 극장에서부터 공연하며 탄탄한 팬덤을 구축했다. 이후 2세대 K팝 대표 보이그룹인 '빅뱅', 2세대 K팝 간판 걸그룹들인 '소녀시대' '카라'가 현지에서 열풍을 일으키며 큰 주목을 받았다.

3세대 K팝 그룹부턴 일본에서 국민그룹 반열에 오르는 팀들이 대거 등장했다. 대표적인 그룹이 '방탄소년단'(BTS) '트와이스' '블랙핑크'다. 방탄소년단은 팀 못지 않게 멤버들 각자에 대한 충성도 역시 높다.
'세븐틴'은 지난해 일본 콘서트계 성지로 통하는 닛산 스타디움에 입성하며 인기를 확인했다. 이곳에 입성한 K팝 그룹은 동방신기에 이어 세븐틴이 두 번째다. 'TT' 이후 일본 국민 걸그룹의 위상을 자랑하는 트와이스도 작년 해외 여성 아티스트 처음으로 이곳에서 공연했다.

엠넷 '프로듀스 48'을 통해 결성된 한일 프로젝트 그룹 '아이즈원'도 일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아이브'(안유진·장원영) '르세라핌'(김채원·사쿠라) 등 이 팀 출신 멤버들이 속한 4세대 K팝 걸그룹도 현지에서 위상이 남다르다. '에스파' '뉴진스' 역시 도쿄돔 입성 등 일본에서 큰 인기를 자랑하는 4세대 K팝 대표 걸그룹들이다.

이와 별개로 국내 대형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DM) 축제 '월드 디제이 페스티벌'(월디페)이 일본에 진출한다. 오는 28~29일 일본 마쿠하리 메세에서 현지 첫 공연을 열고 한국형 페스티벌 문화의 현지 이식에도 나선다.

◆1990~2000년대 큰 영향 끼쳤던 J-팝…최근 다시 붐 리바이벌

앞서 1998년 김대중 정부가 문화체육관광부(옛 문화관광부)를 통해 일본 문화 1차 개방 계획을 발표했을 때 한국 문화계는 긴장했다. 당시 일본문화가 개방이 되지 않았음에도, 영향력은 꽤 뿌리가 깊었기 때문이다.
특히 1990~2000년대 국내 음악 좀 듣는 이들의 뇌관을 흔들었던 J팝의 영향력이 상당했다. 일본 록 밴드 'X-재팬'과 '안전지대' 같은 팀들은 물론 일본 솔로 가수 아무로 나미에, 일본 소프트 록 밴드 '자드(ZARD)'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국내 이식됐다. '카시오페아' '티-스퀘어' 같은 J-퓨전 재즈 팀들도 마니아층을 구축했다. 일본 아이돌 보이그룹 '스마프', 걸그룹 '스피드'와 '모닝구 무스메'의 인기는 소셜 미디어 없이도 대단했다.

2000년대 중후반엔 듀오 '하바드'를 비롯 시부야케이가 국내에서 유행하며 싸이월드 등의 배경음악을 장식하기도 했다.

이후 K-팝 열풍이 강해지면서 한동안 국내 J-팝 붐은 잠잠했다. 그러다 2010년대 후반 '세카이노 오와리' 같은 밴드 계열의 팀들이 입소문을 타면서 'J-팝 붐 리바이벌'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비슷한 기간 1980~1990년대 일본에서 유행한 시티팝이 국내에서 재발굴되면서 젊은 세대 사이에서도 J팝의 과거, 현재가 입소문이 났다.

2020년대 들어 혼성 유닛 '요아소비', 싱어송라이터 이마세 등이 국내에서 점차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이후 작년엔 J-뮤지션들의 내한공연이 폭발했다. 아도(ADO·アド), 아마자라시(あまざらし), 킹 누(キングヌー) 등의 첫 내한공연이 잇따랐고 즛토마요, 아타라시이 각코! 같은 마니아성이 짙은 팀들도 내한공연하면서 국내 탄탄한 J-팝 팬덤을 확인했다.

심지어 작년 11월엔 국내 첫 대형 J팝 페스티벌 '원더리벳 2024(WONDERLIVET 2024)'이 열리기도 했다. 이 축제는 성공에 힘 입어 올해도 예정됐다.

그간 해외 공연엔 관심이 없던 것으로 알려졌던 일본 톱 가수 아이묭도 지난 4월 첫 내한공연했다. 일본 밴드 '래드윔프스'는 오는 9월 국내 록 페스티벌 '2025 렛츠락페스티벌' 라인업에 포함됐다.
일본 남성 가수 3대장으로 통하는 후지이 가제(후지이 카제), 요네즈 겐시(요네즈 켄시), 유우리는 각각 국내에서 의미가 있는 공연장들인 고척스카이돔, 인천 인스파이어 아레나, 케이스포돔에서 단독공연했다. 국내에서 인기를 누린 일본 가수들의 상당수는 저패니메이션(재팬+애니메이션) OST를 부른 명단에 포함돼 있다.

이시바시 에이코, 아오바 이치코 등 큰 팬덤은 보유하고 있지 않지만 음악성으로 국내 음악 팬들에게 영감을 준 여성 싱어송라이터들도 잇따라 내한공연했다.

◆합작 회사는 물론 다양한 형태 컬래버…인디 신(scene)의 협업도 눈길

K팝 한류 초창기엔 일본 굴지의 엔터테인먼트사와 국내 K팝 기획사 간 협업이 주를 이뤘다.

일본 내 대형 매니지먼트사 중의 하나인 에이벡스와 SM엔터테인먼트 성공적 협업이 대표적이다. 에이벡스는 YG엔터테인먼트와 레이블 와이지엑스(YGEX)를 만들기도 했다.
이후 양국의 엔터사 협업은 다양한 모양을 거치다, K팝이 명실상부 전 세계 주류가 되면서 일본이 K팝 시스템을 받아들이는 형태로 발전했다. 대표적인 성공사례가 JYP엔터테인먼트와 소니 뮤직이 공동 기획한 일본 걸그룹 '니쥬'다. 이들의 협업은 보이그룹 '넥스지' 론칭으로도 이어졌다.

국내 엔터테인먼트업계 큰 손 CJ ENM이 일본 연예 기획사 요시모토 흥업과 합작한 라포네(LAPONE) 엔터테인먼트도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보이그룹 '아이엔아이(INI)'과 '제이오원(JO1)', 걸그룹 '미아이(ME:I)'와 '이슈(IS:SUE)' 등 이 팀이 론칭한 아이돌 그룹은 모두 성공했다. 하이브(HYBE)의 일본 레이블인 YX 레이블즈(옛 하이브 레이블즈 재팬) 소속인 그룹 '앤팀'과 이 레이블이 최근 선보인 '아오엔'도 상승세다.

올해 미국 최대 음악축제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 2025(Coachella Valley Music and Arts Festival)'에 성공적으로 데뷔한 K팝 시스템의 일본 걸그룹 '엑스지(XG)'는 에이벡스가 설립한 한국 법인 '엑스갤럭스(XGALX)'에 소속돼 5년간 K-팝 방식으로 트레이닝을 거친 후 글로벌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여기에 뮤지션 간 협업도 활발해지고 있다. 래퍼 겸 프로듀서 지코는 일본 얼터너티브 힙합그룹 '엠플로(m-flo)'가 데뷔 25주년을 기념해 발표한 신곡 '에코 에코'를 협업했다. 후지이 가제가 3년 만에 내는 정규 음반의 선공개곡으로 발매한 '하치코'엔 그룹 '뉴진스' 프로듀서이자 명반 '뽕'으로 일본에도 알려진 국내 DJ 겸 프로듀서 이오공(250·이호형)이 힘을 보탰다.

르세라핌은 오는 7월24일 공개되는 넷플릭스 시리즈 '마이 멜로디 & 쿠로미' 주제가 '가와이이(Kawaii)(Prod. Gen Hoshino)'를 가창했는데 이 곡의 프로듀싱은 일본 유명 싱어송라이터 호시노 겐이 맡았다. 르세라핌 멤버 허윤진이 이 곡 작사에 참여했다.
인디 신에서도 교류가 활발하다. K-팝 얼터너티브 그룹 '바밍타이거'는 최근 아타라시이 각코!와 합작한 싱글 '나란히 나란히(Narani Narani)'를 발매했다.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전진희가 최근 발매한 새 정규 음반 '우후(雨後)(uuhu)' 편곡엔 아오바 이치코의 프로듀서로 활동 중인 우메바야시 타로(우메바야시 다로)가 참여했다. 사이키델릭 샤머닉 펑크(Psychedelic Shamanic Funk) 밴드 '추다혜차지스(Chudahye Chagis)'가 최근 내놓은 두 번째 정규 앨범 '소수민족'엔 일본 사운드 엔지니어 우치다 나오유키(Uchida Naoyuki)가 협업했다.

한국, 일본 MZ세대는 이전 세대와 달리 서로의 나라에 대한 반감이 크지 않다. 특히 일본 Z세대는 K팝을 비롯한 한국 대중문화를 어릴 때부터 접해 익숙하고, 한국 Z세대는 일본 대중문화를 크게 즐기지 않았지만 만화 '슬램덩크'처럼 인기를 누리면 거부감 없이 찾아보고 있다.

'당신이 알아야 할 일본 가수들' 저자인 J팝 전문 황선업 대중음악 평론가(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는 "지금 한일 음악 교류만큼 활발한 때도 드물다. 일본에선 K-팝이 이미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았고, 한국에선 J-팝을 새롭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려는 젊은 세대의 움직임이 눈에 띈다"면서 "국교 정상화 60주년이라는 계기를 통해 앞으로 두 나라의 음악이 더 자주, 더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일본센터장을 지낸 '한류 전문가' 황선혜 일본 조사이국제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일본 내 K팝은 단순한 시장 진출을 넘어 다양한 형태의 한일 협업으로 확장되고 있다"면서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일본인으로 구성된 그룹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고 한일 기업 간 합작을 통해 자생적인 한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또한, K팝 그룹이 일본 드라마나 애니메이션의 주제곡을 맡는 등 활동의 영역을 점차 넓혀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동시에 XG처럼 K-팝도 J-팝도 아닌 'X-팝'이라는 새로운 콘셉트를 내세우며 독자적인 음악 정체성을 만들어가고 있는 팀도 있다는 걸 짚었다.

황 교수는 이를 통해 "앞으로 음악 산업에서 한일 협업은 단순한 시장 진출을 넘어서 인재 발굴과 사업 시스템의 다양화로 이어지며 글로벌 음악 시장의 재편을 이끌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