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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남북관계를 녹일 마중물로 9·19 군사합의를 선제적으로 복원하겠다고 선언하는 등 북한과의 대화 재개를 위해 어떻게 협력할 것이냐에 초점을 맞췄다. 대일 메시지는 과거사를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미래 관계' 정립에 방점을 찍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80회 광복절 경축식에서 "현재 북측의 체제를 존중하고, 어떠한 형태의 흡수통일도 추구하지 않을 것이며 일체의 적대행위를 할 뜻도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고 강조했다.
이어 "싸워서 이기는 것보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보다, 싸울 필요가 없는 상태, 즉 평화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우리 정부는 기존 합의를 존중하고, 가능한 사안은 바로 이행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남북 간 우발적 충돌 방지와 군사적 신뢰 구축을 위해 '9.19 군사합의'를 선제적 단계적으로 복원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윤석열 정부의 대북 강경정책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이 대통령은 "숱한 부침 속에서도 이어지던 남북 대화가 지난 정부 내내 끊기고 말았다"며 "먼 미래를 말하기에 앞서 지금 당장 신뢰 회복과 대화 복원부터 시작하는 것이 순서"라고 했다.
북한을 향해서는 "신뢰를 회복하고, 단절된 대화를 복원하는 길에 북측이 화답하기를 인내하며 기대하겠다"며 거듭 우호적인 메시지를 발신했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대북·통일 분야 경축사와 관련해 "지난 3년 간 강 대 강 남북 관계로 불신의 벽이 높고 북한의 적대적 태도가 여전하다"며 "이런 상황을 감안해 평화의 소중함과 남북관계 신뢰 회복의 필요성을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북한의 핵 능력이 고도화하고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의 유동성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핵 없는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들기 위한 국제 협력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비핵화는 단기에 해결할 수 없는 복합적이고 어려운 과제"라면서도 "남북, 미북 대화와 국제사회의 협력을 통해 평화적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 나가면서,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발전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공감대를 넓히겠다"고 했다.
외교 분야에 대해선 한일 관계를 중심으로 언급했다. 다음 주 한일 정상회담을 위해 일본을 방문하는 만큼 시기적으로도 더욱 비중을 실을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올해는 광복 80주년이자 한일수교 60주년"이라며 "과거를 직시하되 미래로 나아가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라고 힘줘 말했다.
이어 "일본은 마당을 같이 쓰는 우리의 이웃이자 경제 발전에 있어 떼놓고 생각할 수 없는 중요한 동반자"라며 "우리 양국이 신뢰를 기반으로 미래를 위해 협력할 때 초격차 인공지능 시대의 도전도 능히 헤쳐 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국익중심 실용외교의 원칙으로 셔틀외교를 통해 자주 만나고 솔직히 대화하면서 일본과 미래지향적인 상생협력의 길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과거사 문제도 외면하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한일 양국은 오랫동안 굴곡진 역사를 공유해 왔기에 일본과 관계를 정립하는 문제는 늘 중요한 과제"라며 "우리 곁에는 여전히 과거사 문제로 고통받는 분들이 계신다. 입장을 달리하는 갈등도 존재한다"고 돌이켰다.
그러면서 일본 정부를 향해 "과거의 아픈 역사를 직시하고 양국 간 신뢰가 훼손되지 않게 노력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며 "그럴 때 서로에게 더 큰 공동 이익과 더 나은 미래가 펼쳐지리라 생각한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푸른색과 붉은색, 흰색이 교차하는 넥타이를 맸다. '통합'을 상징하는 의미로 지난 6월 4일 취임일 등에서도 착용한 바 있다.
이날 경축사에는 '평화'라는 단어가 12회, '미래'라는 단어는 11회 등장했다.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국민 제외)는 '빛'으로 19번 썼다.
이 대통령은 "우리 선조들이 되찾은 자주독립의 빛이, 우리 국민이 이룬 민주주의의 빛이, 우리 앞날을 밝히는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올해 경축식은 '함께 찾은 빛, 대한민국을 비추다'를 주제로 진행됐다. 행사에는 독립유공자, 유족, 국가 주요 인사, 주한외교단, 사회 각계 대표, 시민, 학생 등 국민 2500여 명이 참석해 독립을 위해 헌신한 선열들의 희생을 기렸다.
또 광복절 8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로 단상에는 태극기 80개가 비치됐다.
국민의례 순서에는 현재의 태극기와 함께 과거 독립운동 당시 사용했던 태극기들이 함께 등장했고, 국기에 대한 맹세문은 2021년 홍범도 장군 유해 국내 봉환 시 국민특사로 동행했던 배우 조진웅씨가 낭독했다.
이 대통령은 독립유공자 고(故) 이은숙씨의 후손 등 독립유공자 후손 5명에게 직접 포상을 수여했다. 이들을 포함해 독립유공자 311명이 정부 포상을 받았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