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연고자 장례 봉사자들 "혼자 죽어가는데 같이 슬퍼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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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무연고자 장례 봉사자들 "혼자 죽어가는데 같이 슬퍼해야"

무연고 사망자 공영장례·추모식 현장
다양한 이유로 인연이 끊어진 생명들
떠난 이와 남은 이 모두를 위한 예식

[나이스데이] "여기에 모인 우리가 당신을 배웅할 수 있게 돼 반가웠습니다."

더위가 멈춘다는 처서를 하루 앞둔 지난달 22일 오전. 경기 고양시 덕양구 소재 서울시립승화원에서는 무연고 사망자 장례식이 열렸다. 서울시가 위탁한 장례업체와 시민단체가 진행하는 공영장례였다.

이날은 고(故) 백모(65)씨와 고 이모(45)씨의 빈소가 차려졌다.

정보는 이름과 생년월일, 주소지 등 공문에 적힌 내용이 전부였지만, 이날 빈소에 있던 이들은 고인들의 삶을 생각하며 묵념했다. 봉사자 두 명은 익숙하긴 하지만 엄숙하게 상주 역할을 해냈다. 빈 영정사진 밑에는 6개의 국화가 놓였다.

뉴시스는 이들의 장례식에 동행했다. 오전 10시16분께 관을 카트에 실어 각 22번과 23번 화장로로 향했다. 영정 사진이나 봉해진 관 너머로도 고인을 직접 볼 수 없었지만, 관을 든 손에 전해지는 무게감 만큼은 고인이 살아있었던 존재임을 느끼게 했다.

이른 오전 서울 강동구에서부터 검은 양복을 입고 온 김동한(68)씨는 무연고 장례식 봉사만 1년6개월째 나오고 있다. 왼팔에 상주를 표하는 완장은 없었지만, 그는 봉안 전까지 이씨 옆을 지켰다.

김씨는 "자원봉사 한 지 15년은 된 거 같은데, 대다수는 살아있는 사람을 돕기 위한 봉사였다"며 "이곳은 절실하게 봉사가 필요한 곳이라 생각이 들어 계속 오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와 연락이 끊겼던 50년 지기 친구도 서울시 공영장례를 통해 떠났다. 김씨는 그 사실을 봉사한 후에야 알게 됐다.

그는 "살아 있을 때 더 만났어야 했는데"라고 아쉬워하며 "복지가 살아있는 사람에게 차별 없이 이뤄져야 하듯, 세상을 떠난 사람에게도 최소한의 배려가 필요한 것 같다"고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일산에서 봉사를 위해 왔다는 김모(37)씨는 "공영장례 최전선에서 무연고 사망자분들이 많이 늘어났다는 걸 피부로 느낄 수 있다"며 "독거노인이나 노숙자뿐만 아니라 독신이나 딩크족(자녀가 없는 부부) 모두 대상이 될 수 있기에 인식 개선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백씨와 이씨는 같은 제사상을 받았지만, 유골 '처리' 방법은 달랐다.

백씨는 가족이 있지만 가족이 장례를 시에 위탁하며 '무연고자'가 됐고, 이씨는 연고자와 연락이 닿지 않아 '무연고자'가 돼서다. 이씨 유골은 경기 파주시 공영장례 봉안시설에 5년 동안 머무르지만, 백씨 유골은 장례 후 화장터 한쪽에 있는 유택동산에 뿌려졌다.

백씨처럼 연고자가 있더라도 불가피한 이유가 있다면 시신 인수를 기피할 수 있다.

가족관계 단절, 신체적·경제적·사회적 이유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장기간 고인과 연락하지 않았거나, 연고자가 저·고령이어서 장례 진행이 힘든 경우, 안치료 등 비용을 부담할 수 없는 사례도 있다. 수감 중이거나 군대에 있어 장례를 위임하는 이도 있다.

즉 법적으로 장례를 치러 줄 이가 마땅치 않으면 '무연고자'로 분류되고, 이 시신은 나눔과나눔이 진행한 공영장례처럼 각 지자체가 지정하는 방식으로 '처리'하게 된다. 달리 말하면 사망한 장소에 따라 공영장례 형태가 위 사례와 다를 수 있다.

태어날 때처럼 죽을 때도 장소가 중요한 셈이다.

1000도에서 1시간10분가량. 회백색 가루로 남은 두 고인은 품에 안기는 함에 담겼다. 유택동산으로 향하며 매미 소리에 아득함을 느끼기도 잠시, 두 상주는 하얀 장갑을 낀 양손으로 재를 퍼 산골했다.

위패에서 꺼낸 이름을 불태우는 행위로 약 2시간18분의 장례식이 끝났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이들…무연고 사망자를 위한 시민 추모식

장례식 외에도 한 달에 한 번 무연고 사망자에 대한 추모식이 열린다.

지난달 13일 오후 7시께 서울 중구에 있는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을 나서자,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발걸음을 옮긴 국립중앙의료원 장례식장 건물 지하 영결식장에서는 제135차 무연고 사망자를 위한 시민 추모식이 준비 중이었다.

제사상 위에는 한 달 동안 서울에서 사망한 무연고 사망자 124명의 이름이 붙어 있었다.



을지대 장례지도학과 동아리 섬김 학생 6명도 추모식에 함께 했다. 앳된 얼굴에 검정 옷을 입은 이들은 오후 6시께부터 제기를 정리했다.

이날 예식은 오후 8시18분께 마무리됐다. 학생들은 직접 작성한 추모사를 읽거나, 제사상에 올릴 차를 건네며 진행을 도왔다. 추모식은 회비를 모아 한 달에 한 번 진행되고, 이들은 자원봉사 형태로 참여한다.

학생들은 입을 모아 고인에 대한 추모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신입생인 권서현(19)씨는 "(장례가) 죽은 사람을 위해서 하지만 살아있는 사람들이 고인과 작별하기 위한 마지막 여정이라 생각한다"며 "장례를 통해 위로받는 건 살아있는 분들"이라고 말했다.

반려동물장례지도사이기도 한 권씨는 "동물들은 가족이 장례를 치러주지 않는 이상 쓰레기로 분류된다"며 "사람도 똑같지 않을까"라고 덧붙였다.

김채영(21)씨는 장례에 대해 "마지막에 외롭지 않게 인사하는 일"이라며 "차도 올리고 음식도 먹으면서 당신을 기억하는 사람이 여기 모여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한다"고 했다.

먼 훗날 홀로 장례지도를 하게 될 때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지 묻자 "거창한 건 필요 없다"며 "잘 도와주셨다고만 기억되면 뿌듯할 것 같다"고 답했다.

이해름씨를 대신해 추모사를 읽은 정성환(21)씨는 "사실 당연히 와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이렇게 사람들이 혼자서 죽어가는데 같이 슬퍼해 주고 생각해 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입대를 앞둔 그는 "보통 장례식장에서는 절을 하는데 여기에서는 차 한 잔 올리고 인사하는 방식으로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추모할 수 있다"며 "새로운 사람이 더 와서 이 추모식에 함께 참여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자리를 메운 사람 수만큼 추모 방식은 시 낭독부터 합창까지 다양했다.

가수 안계섭씨가 "끝없이 무언가를 찾는 사람들, 하염없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라는 가사로 노래를 부를 때 섬김 회장 소윤주(21)씨는 눈물을 훔쳤다.

소씨는 "감정이 그대로 전달돼서 살짝 울컥했던 것"이라며 "연고가 없다 하면 가족이 없다고 생각할 텐데 그게 아니라 꽤 높은 비율로 가족이 있다는 사실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삶과 죽음을 따로 보면 회피하고 싶을 수 있는데 삶이 있어 죽음이 있고 반대도 그렇지 않을까"라며 "회의적으로 살 수도 있지만 누구나 죽기에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한 시간 무렵 지나 제사상에는 차 31잔이 놓였고, 연고 없는 이들은 다음 달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보자며 제각기 삶으로 돌아갔다.

이들이 떠난 국립중앙의료원 건물에는 '바다에 뛰어들지 않는 자는 바다를 건너지 못한다'는 문구가 걸려 있었다. 죽음을 마주해 가는 그들에게 있어 삶과 죽음은 다르지 않아 보였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