쎄시봉 노래도 '케데헌'에 나왔습니다 "구심력 떼창 아닌 원심력 합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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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시봉 노래도 '케데헌'에 나왔습니다 "구심력 떼창 아닌 원심력 합창"

전국투어 '쎄시봉, 더 라스트 콘서트' 서울 공연 현장
57년 만에 첫 완전체 공연이자 마지막 공연
윤형주,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삽입된 '바보' 불러
김세환, 여전한 소년미
조영남 너스레로 공연에 리듬감…송창식 노래값 명성 여전
MC 이상벽 "곰삭은 멤버들의 목소리"

[나이스데이] "수소문을 해봤더니, 아마 40대 음악감독들이 유년 시절에 들었던 노래에 대한 기억이 무의식 속에 남아 있었던 거 같아요."

11일 오후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 1960년대 말 서울 무교동 음악감상실 쎄시봉 '원년 멤버 5인'인 윤형주(78)가 글로벌 신드롬을 일으킨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에 자신의 대표곡 '바보'가 삽입된 사실을 언급하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윤형주가 33초간 삽입됐다고 말하는 이 노래는 극 중 한의원 장면에서 흘러나온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엔딩 크레디트에도 이 노래 정보가 올라가 있다. 1980년 MBC TV '금주의 가요'에 5주간 1위를 차지한 노래다.

"오랜만에 그녀가 보내 온 짧다란 사연 하나 이젠 / 다시 볼 수가 없어요" 여전히 순수하게 애달픈 윤형주의 목소리에 조부모를 모시고 온 손주들은 감탄사를 연발했다. 40년을 넘게 이어온 곡의 계보와 생명력을 새삼 확인한 셈이다.

윤형주는 "여기 60~70대분들은 젊었을 때 제가 무대에 서면 오빠라며 소리를 질렀던 소녀들"이라고 웃었다.

장기간 추석 연휴엔 이렇게 쎄시봉도 있었다. 쎄시봉 원년 멤버가 한 자리에 모여 펼치는 MBC TV '2025 쎄시봉 더 라스트 콘서트' 실황이 지난 3일 방송됐다. 지난달 6일 성남에서 포문을 연 쎄시봉 전국투어 '쎄시봉, 더 라스트 콘서트(The Last Concert)' 현장을 담았다. 이날 오후 2시와 6시, 12일 오후 2시와 6시에 이 투어의 서울 공연이 이어진다. 추석 연휴 방송 프로그램 중 '가왕' 조용필의 고척스카이돔 콘서트가 큰 화제성을 자랑했지만, 그와는 다른 결로 국내 대중음악사를 풍성하게 만든 쎄시봉의 존재감 역시 만만치 않다.

이번 투어는 윤형주를 비롯해 조영남(80), 송창식(78) 김세환(77) 그리고 MC 이상벽(78)까지 '평균 나이 만 78세' 쎄시봉 원년 멤버 5인이 57년 만에 뭉친 첫 완전체 무대이자 마지막 완전체 무대다. 쎄시봉 원년 멤버이자 멤버들의 프로듀서 역할을 맡은 이장희가 건강 문제로 참여하지 못해 아쉽지만, 여전히 현역인 네 멤버들 한 무대에 볼 수 있어 관심이 컸다.
쎄시봉은 당시 통기타 가수라면 누구나 오르고 싶었던 다운타운 라이브 무대이자 '청년음악의 산실'로 불렸다. 통기타, 청바지를 유행시킨 베이스 캠프다. '쎄시봉 친구들'이 2010년 MC 유재석·배우 김원희가 진행한 '놀러와'에 출연한 것이 기폭제가 되면서, 전국 투어 '쎄시봉 열풍'을 일으켰다. 이들의 얘기는 영화 '쎄시봉'(2015·감독 김현석)으로 재탄생하기도 했다.

이날 오후 2시 무대는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핫100' 1위 곡이자 디즈니 뮤지컬 애니메이션 영화 '라이온킹'에 삽입된 미국 그룹 '토큰스'의 '라이언 슬립스 투나잇'(The Lion Sleeps Tonight)으로 문을 열었다. 조영남이 과거 MBC TV 예능물 '공감토크쇼 놀러와'에서 작업송으로 소개하면서 부른 미국 R&B 보컬 그룹 '드리프터스'의 '세이브 더 라스트 댄스 포 미(Save the Last Dance for Me)'가 조용히 이어졌다. 조영남, 김세환, 윤형주 세 멤버들의 화음이 은은했다.

이상벽은 "곰삭은 멤버들의 목소리"라고 쎄시봉을 소개했다. 이들의 보컬이 오래됐지만, 깊은 맛이 든 상태라는 것이다. 실제 멤버들은 단체곡 뿐 아니라 솔로곡에서도 짙은 여운을 선사했다.

77세 막내로 여전히 미소년 풍모를 자랑하는 김세환은 '사랑하는 마음' '길가에 앉아서' '좋은 걸 어떡해' 등을 여전히 순수한 목소리로 들려줬다. 그의 말마따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윤형주는 미국 포크 듀오 '사이먼 앤 가펑클'이 영국 중세 민요를 리메이크한 '스카보로 페어(Scarborough Fair)'를 자신의 해석대로 들려줬다. 특히 화음 넣는 걸 좋아한다는 그는 이 곡을 위해 본인이 4성부 화음을 미리 녹음해와 본 공연에선 자신의 실제 목소리까지 5성부로 소화했다. 충남 보령 대천 해수욕장에 노래비가 세워진 '조개껍질 묶어'도 불렀다. 그가 이 해수욕장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다 즉석에서 작사, 작곡한 곡이다. 윤형주는 또한 육촌형인 일제강점기 대표적 저항 시인 윤동주를 기리며 '두 개의 작은 별'을 들려주기도 했다.

놀(NOL) 티켓 쎄시봉 서울 공연 예매 비율을 보면, 30대 이상이 94.1%를 차지한다. 30, 40대 자녀들이 60, 70대 부모들의 티켓을 예매해준 것으로 추정된다.
관객들은 남녀노소 상관 없이 무대 위에서 흘러 나오는 노래들을 떼창 아닌 합창했다. 젊은 층이 주로 콘서트장을 방문하면서 생긴 말인 떼창은 구심력의 뉘앙스를 풍긴다. 무대 위 아티스트를 중심으로 관객들이 혼연일체가 되는 모양새다. 반면 합창은 원심력의 뉘앙스를 갖는다. 아티스트뿐 아니라 관객 모두가 노래를 나눠서 부른다는 느낌이다. 그렇게 살아온 삶이 전방위로 퍼져나간다. 그러면서 서로의 안부와 평안을 자연스럽게 찾고 묻고 답한다.

이런 쎄시봉 공연의 리듬은 조영남이 만든다. 여전히 풍성한 질감의 보컬을 들려준 그는 김정구 '눈물 젖은 두만강' 등 먼저 세상을 뜬 선배 가수들의 장례식장에서 울려 퍼진 노래들의 목록을 언급하더니, 자신이 가만히 있으면 본인 장례식 때는 신나는 리듬의 '화개장터'를 부를 거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자신의 대표곡인 '딜라일라' '제비'는 다른 가수들이 부르기엔 너무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그래서 추가로 만든 곡이 '모란동백'이라며 이 노래를 들려줬다. 인생의 순환이 잔잔하게 그려진 이 곡 막바지엔 신발을 벗고 눕는 퍼포먼스를 벌여 공연장에 한바탕 웃음바다가 밀고 들어왔다.

노래맛이 결코 조영남에 뒤지지 않은 송창식은 양일 모두 오후 6시 공연에만 나온다. 그는 앞서 연습실에서 통금 시간에 걸려 구치소에 갇혀 있을 때 경찰에게 노래를 들려줘 벌금을 노래값으로 제했던 비화를 들려주기도 했다. 그 만큼 뛰어난 가창력의 소유자다.

이 전설들이 마지막 무대를 펼치고 있다. 서울 공연 이후엔 부산, 대구, 인천, 용인, 수원 등을 돈다. 윤형주는 "팔순이 넘는 노인들이 이러고 다니는 건 기적이다. 우리가 무대 위에 서 있다는 것 자체가 작품"이라고 말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