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 韓 음악계 대서특필…젊음의 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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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 韓 음악계 대서특필…젊음의 리필

'광복 80주년 KBS 대기획 - 이 순간을 영원히 조용필'
9월6일 고척돔 공연 녹화 현장 리뷰
韓 근현대 음악의 편람·韓 근대현사의 요람
추석 당일인 10월6일 KBS 2TV 통해 방송

[나이스데이] 어떤 공연은 단순한 콘서트가 아닌, 인문학 나아가 사회학이 됩니다.

2년4개월 전인 지난 2023년 5월 '가왕(歌王)' 조용필(75) 선생님이 서울 올림픽주경기장에서 펼치신 '2023 조용필&위대한탄생 콘서트'를 보고 쓴 리뷰의 첫 문장이었습니다.

이달 6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펼쳐진 '광복 80주년 KBS 대기획 - 이 순간을 영원히 조용필'을 관람하면서 이를 다시 실감했습니다.

'이 순간을 영원히-조용필'은 KBS와 조용필 선생님이 오랜 논의 끝에 성사시킨 프로젝트입니다. 조용필 선생님이 KBS에서 단독 무대를 선보인 건 1997년 '빅쇼' 이후 무려 28년 만입니다.
올해 데뷔 57주년을 맞이한 조용필 선생님의 음악 인생을 압축한 콘서트만큼, '광복 대기획' 같은 대형 프로젝트에 어울리는 무대는 없을 겁니다. 그의 콘서트는 사실 한국 근현대 음악의 편람이요, 한국 근대현사의 요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거든요. 세트리스트만 펼쳐놓아도 우리 반세기 스토리텔링이 깃든 놀라운 정경이 펼쳐집니다. 이번에 자체 처음 입성한 고척돔 공연 역시 마찬가지, 아니 더했습니다.

약 2시간20분 동안 인트로 격인 '미지의 세계'를 시작으로, '여행을 떠나요'까지 게스트 없이 28곡을 들려주셨는데요, 밴드 사운드를 기반으로 50년 동안 국내에서 유행한 장르들을 대거 포함됐습니다.

뉴 웨이브('미지의 세계'), 국악 크로스오버('못찾겠다 꾀꼬리'·'자존심'), 슬로우 고고('창밖의 여자)', 팝 록('그래도 돼'), 트로트('돌아와요 부산항에'·'허공'), 신스팝('단발머리'), 하드록('태양의 눈'), 블루스 로큰롤('여행을 떠나요') 등 일일이 셀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스타일이 집약됐죠. 각각 시대를 거쳐간 장르들로 조용필 선생님의 음악적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고 유연한지를 증명한 방증이었습니다.
조용필 선생님의 큰 특징은 이 장르적 문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자신의 화법으로 풀어냈다는 겁니다. 진성과 가성을 오가며 마치 노랫말 속 화자가 된 듯 뛰어난 몰입력으로 곡의 서사를 입체적으로 만드는 그는 창법의 다변화를 위해 판소리를 배운 것은 유명한 일화죠. 사실 판소리는 1인극이나 다름 없죠.

음악 장르적 형식뿐만 아니라 내용적인 것을 거칠게 살펴봐도, 조용필 선생님의 노래엔 우리 최근 50년이 압축돼 있습니다. '어제, 오늘 그리고'는 조용필 선생님이 1985년 발매한 7집에 실린 곡인데, 이 앨범은 성인가요의 이미지를 털어내고 록에 대한 정체성을 각인시켰습니다. 여전히 하수상했던 시대에 많은 이들에게 "어제 우리가 찾은 것은 무엇인가 잃은것은 무엇인가 / 버린 것은 무엇인가"라고 한 목소리로 노래하게 했고, 이날 공연장에서도 수많은 이들이 떼창했습니다.

7집과 같은 해 발매된 8집에 실린 '허공'은 작곡가 정풍송 씨가 신군부로 인한 상실감을 담은 노래이기도 하죠. 1991년 발표한 13집 '꿈'은 급격한 도시화가 된 당시의 천변풍경이었습니다. 이날 이 곡 공연하는 내내 화면엔 도시 풍경이 그려졌는데 그 위에 두둥실 떠오른 보름달이 추석을 맞이하는 이들을 위해 건넨 위로처럼 보였습니다.
2013년 발표한 19집 수록곡 '바운스'는 장년의 가수가 세대를 통합하는 새로운 풍경을 펼쳐냈습니다. 작년 발매한 20집의 선공개곡으로 2022년 먼저 선보였던 '찰나'는 거장의 시간 개념이 이렇게 젊다는 것을 보여주며, 노년층이 급격하게 늘어난 최근의 개별적 삶들을 톺아보게 했습니다. 이렇게 음악이 삶이 되는 것이 조용필 선생님이 57년 동안 빚어온 서술 방식입니다. 거장의 품격이 무엇인지를 증명하는 '바람의 노래' 무대는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라는 지난한 삶 속 노래의 본질적 속성을 보여줬습니다. 즉 조용필은 한국 음악계의 대서특필(大書特筆)이라고 정의할 만했습니다.

현재 K팝 아이돌 사이에서 활발한 팬덤 문화의 원류를 거슬러 올라가면, 맨 위에 조용필 선생님이 있다는 점도 우리 근현대 음악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이유죠.

'오빠부대'의 원조로 통하는 조용필 선생님의 팬덤은 여전히 강력합니다. 1997년 결성한 '이터널리', 1999년 출발한 '미지의 세계', 2001년 만들어진 '위대한 탄생' 등 활발히 활동 중인 대형 팬클럽만 세 곳이죠. 이들은 매번 조용필 콘서트가 성료되는데 크게 기여했는데, KBS가 주도한 이번 공연에서도 곳곳에서 활약했습니다. 한 팬은 고척돔 인근 카페에 조용필 선생님의 고척돔 공연을 기념하기 위해, 무려 커피 800잔을 팬들을 위해 선결제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예전 공연만 생각하고 오랜만에 조용필 선생님 공연을 보게 된 장년의 팬들은 놀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슈퍼밴드 '위대한탄생'(리더 최희선(기타), 이태윤(베이스), 최태완(키보드), 김선중(드럼), 이종욱(키보드))이 함께 하는 선생님의 공연은 사실상 하드록 공연이거든요. 이날도 선보인 '태양의 눈' 무대는 음악, 조명, 연출 등이 대단히 강렬해 흡사 '메탈 오페라' 장면을 방불케 합니다. 사실 고척돔은 전문 공연장이 아니라 밴드가 사운드를 제대로 잡기엔 힘든 곳인데요. 메탈리카, U2 등 세계적인 밴드들이 이곳에서 공연했는데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사운드를 뽑아내는 내공은 절대 뒤지지 않았습니다.

조용필 선생님은 초반에 "제 공연 자주 오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오랜만에 보시는 분들은) 많이 변했죠?"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젊은 음악 팬들 사이에선 밴드 신드롬이 불고 있는데,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이미 밴드 열풍을 내재화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용필 선생님과 KBS 측이 무료로 대여해준 응원봉 덕분에 요즘 K-팝 아이돌 팬덤 문화를 경험해서 즐겁다고 반응한 관객들도 다수였습니다. 조용필이 곧 젊음의 '리필'인 셈이죠. 이날 추첨 등을 통해 1만8000명 관객이 공연을 찾았는데요, 입장료가 무료였음에도 관람 문화는 수준이 높았습니다. 그 가수의 그 팬들이니까요.

이날 VCR에서도 스쳐지나갔지만 KBS 가요대상에서 받은 상 개수만 따져도 조용필 선생님이 얼마나 위대한 가수인지 알 수 있지만, 이 거장의 대단함은 사실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무형의 것입니다. 이날 영상에서 박정현, god, 윤하, 로이킴, 국카스텐 하현우, 데이식스, 이적 같은 수많은 후배 인기 가수들이 존중심을 표한 이유입니다. 이 시대의 마지막 국민가수라 불리는 아이유는 이렇게 표현했네요. "전 세대가 사랑한 유일무이 살아 있는 전설 리빙 레전드"라고.
이런 전설은 하늘도 시기하나 봅니다. 조용필 선생님 공연날 상당수는 비가 오거든요. 조용필 선생님도 이날 하늘을 향해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제 공연은 왜 그렇게도 비가 오는지 묻고 싶다"고요. 근데 이렇게 비라도 내리지 않았으면, 아마 공연장 내 뜨거운 열기를 감당하기 힘들었을 겁니다.

조용필 선생님의 음악 세계는 한국 대중음악의 넓이입니다. 이날 고척돔 공연은 조용필 선생님의 세계로 들어가는 확실한 입구가 돼 줬어요. 이미 그 분의 팬들에겐 향수를, 요즘 세대에겐 새로움을 안겨줬거든요. 공연 끝날 때 고척돔 바깥엔 부모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다수의 자녀들이 눈에 띄었는데요. 공연장엔 모녀, 부자 관계도 많았습니다. 서울에 사는 50대 후반의 김영숙 씨와 20대 중반의 이소정 씨 모녀는 둘 다 조용필 선생님의 팬이라고 했습니다. "남편보다 조용필"이라고 웃으며 외치는 엄마 옆에서 딸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최애가 또 생겼네요." 조용필 선생님은 노래를 하지 않네요. 노래가 그를 부릅니다.

이날 녹화분은 추석 당일인 10월6일 KBS 2TV를 통해 방송됩니다.
뉴시스